인구와 부
조영태·고우림 지음|북스톤|355쪽|2만2000원
2019년 ‘총·균·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88) UCLA 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기자에게 “한국의 인구 감소에 대해서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자원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인데, 인구가 줄면 이를 먹여 살릴 자원 수입 부담도 줄어드는 거라 꼭 단점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까 우려하는데 남한의 5000만 인구는 고등교육을 받은 양질의 인구다. 4000만이 된다 해도 제3세계 국가의 1억3000만 인구와 비교가 안 된다.”
인구학자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와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소속 고우림 박사가 함께 쓴 이 책은 큰 틀에서 보면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시각과 궤를 같이한다. 저자들은 일단 인구 감소는 돌이키기 힘든 일이라 전제한다. “여성 인구가 계속 줄고 있기에 출산율이 2030년까지 1.3으로 회복하지 않는 한, 출생아 수 30만명 선도 쉽지 않다. 이마저도 어느 순간이 되면 합계출산율이 올라도 줄어들게 돼 있다. 이 말은 곧 출산율 회복으로 출생아 수 감소를 극복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는 뜻이다.”
책은 “‘정책’이 아니라 ‘전략’의 틀에서 인구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책은 대체로 ‘출산율을 높인다, 인구를 늘린다’처럼 숫자를 되돌리려는 목표에 갇히기 쉽다. 개인에게 책임과 죄책감이 전가될 뿐, 실질적인 변화 동력이 생기기 어렵다. 반면 전략으로 접근할 때 인구는 해결해야 할 짐이 아니라 사회와 기업이 더 나은 선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원이 된다.”
노인들이 젊은 세대의 ‘짐’이 될 거라는 고정관념부터 깬다. 산업화 세대(1945~1954년생)는 많든 적든 자산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고, 고령자가 돼서도 부채를 여전히 안고 있어 ‘가난한 노인’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지금 노인이 되고 있는 베이비붐 1세대(1955~1964년생)는 다르다. 산업화 세대보다 금융 자산 보유율이 높아 병원비처럼 급하게 현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유동성이 훨씬 높다. 다른 세대에 비해 부채도 크지 않다. 어릴 때 가난한 시절을 겪어 소비 성향이 절제돼 있고, 산업 성장기에 소득 상승을 경험했다. 그래서 건강만 허락한다면 오래 일하고자 하는 욕구도 강하다. “소비 여력이 없는 인구가 늘어날까? 결론은 낙관적일 수 있다. 베이비붐 1세대가 고령자가 되면 노인 빈곤율이 오히려 완화될 수 있다. 따라서 고령자는 무조건 가난해질 거라는 기존 인식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단, 여기엔 중요한 전제 조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고령자가 활동적인 소비자가 되려면 자산을 소비에 쓸 수 있을 만큼 건강하고 자립적이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자녀 세대인 밀레니얼의 ‘진정한 경제적 자립’ 문제다. 대부분 30대인 밀레니얼은 다른 세대가 이 연령대였을 때보다 빚이 더 많다. 이들의 재정적 어려움은 부모 세대인 베이비붐 1세대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저자들은 산업화 세대에 비해 건강관리도 잘돼 있고 수명도 긴 베이비붐 1세대들이 앞으로 ‘절감해줄’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 총의료비가 2022년부터 시작해 2042년까지 약 652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결과는 곧 미래의 고령 인구는 사회적 재정을 갉아먹는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소비자이자 자립형 참여자로 재정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의 출산·양육 친화 제도에 대해서도 시각의 전환을 요구한다. 비혼·저출산이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고, 만혼으로 직장에서 자녀 대학 입학금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기혼·유자녀 중심의 현행 제도는 구성원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가족친화제도’를 제안한다.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제도의 개념을 확장해 ‘가족돌봄’이라는 더 넓은 틀로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 “나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테지만 이 회사에 다니면서 언젠가 부모나 친구를 위해 돌봄 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옆자리 동료가 육아 휴직을 한다고 ‘나만 손해’라고 여기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돈 줄 테니 아이 낳으라는 구태의연한 구호를 외치는 대신 참신하고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대중 눈높이에서 쉽게 풀이해 책장이 쑥쑥 넘어간다. 세대와 성별에 따라 인구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걸 염두에 두고 50대 남성과 30대 여성 연구자가 함께 쓴 시도도 높이 살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