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눈이 더 신선할 수 있어요. 기죽을 필요 없어요.” 최근 ‘일본에서 국문학을 가르칩니다’(정은문고)를 펴낸 고영란(57) 니혼대학 국문학과(일문학과) 교수를 29일 줌으로 만났다.
그가 “니혼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한국 문학이요?” 묻기 일쑤다. 대부분은 외국인이 일문학을 가르친다는 상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 교수는 “일본어가 모어(母語)가 아닌 작가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아쿠타가와상도 그렇고,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쿠타가와상은 일본에서 신진 작가에게 주는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
“한국인이라고 한국의 현대 문학을 잘 아는 건 아니잖아요. 외국인이라서 단어 하나하나 꼼꼼히 사전을 찾아보게 되지요. 원어민이라면 당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들에 의문을 품을 수 있어요.” 그는 “‘우리의 정서는 우리만 알아’ 같은 차별과 계속 싸워왔다”고 했다.
고 교수는 전남대 일어일문학과와 경희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4년 도쿄 교환학생을 계기로 일본에서 연구자의 길을 걸었다. 2010년 전임교수가 되기 전까지 “추방될 불안을 품고 사는 인문학자”였다. 외국인이 취업 비자를 신청할 땐 재정 증명과 함께 자신이 일본 사회에 얼마나 유익한 존재인지 증명해야 한다. 인문학 연구자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고 교수는 “내 한계를 정하고 안 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30년 넘게 일본에서 산 그는 “한국을 향한 일본 사회의 변화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후진국’ 취급을 받았다. “‘크루아상 먹어봤어?’ ‘파스타 먹어봤어?’ 이런 질문도 들었어요.” 창문을 열어 놓고 김치찌개를 끓였더니 위아래 집에서 창문을 쾅 닫는 일도 경험했다. 당시 김치에는 ‘쿠사이(くさい)’란 수식이 붙었다. 악취가 난다는 뜻이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학생들이 한국말로 말을 걸어와요. 저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요. 한국 여행 가면 성수동은 기본으로 간대요. 저는 아직 성수동 못 가봤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