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 그래픽 노블 작가 레이나 텔게마이어의 ‘고스트’(Ghosts, 2016)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는 책이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만화상 중 하나인 아이스너 상을 다섯 차례나 받은 이 작가는 어린 시절 치아 교정 경험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스마일’(Smile, 2010)과 자매 관계를 섬세하게 다룬 ‘씨스터즈’(Sisters, 2014)의 성공에 이어 ‘고스트’에서는 현실과 환상이 어우러진 마법 같은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고스트’의 주인공은 캣과 마야 자매다.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난치병을 앓는 마야의 건강을 고려해 이들의 가족이 캘리포니아 북부의 안개 자욱한 마을로 이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캣은 익숙한 친구들과 캘리포니아 남부의 따뜻한 햇살을 떠나온 것 때문에 불만으로 가득한데, 설상가상 이사 온 마을은 유령들이 출몰하는 곳이다. 유령에 대해 불안감을 지닌 캣과 달리 마야는 호기심을 보이며 그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캣은 동생을 향한 사랑과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실의 두려움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작가는 뜻밖에도 유령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묘사한다. 이른바 마술적 사실주의다. ‘고스트’의 유령은 무섭다기보다는 자매에게 삶의 고통을 마주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알려주는 따뜻하고 유쾌한 존재다. 캣은 멕시코 전통 행사인 ‘죽은 자들의 날’에 유령들과 만난 것을 계기로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죽은 뒤에도 기억과 추억을 통해 사랑하는 이들과 여전히 연결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고스트’는 상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내면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오늘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라고,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감과 사랑의 힘은 때론 죽음까지도 초월할 수 있다고 말하는 호소력 넘치는 작품이다. 지금껏 나온 텔게마이어의 책은 대부분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는데, 아쉽게도 ‘고스트’를 포함한 모든 작품이 현재는 절판 상태다. 부디 복간이 이루어져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