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소설 | 조원규 옮김 | 알마 | 412쪽 | 1만9800원

☞공산주의 붕괴 직전 농촌의 인간 군상과 메시아의 출현.

저항의 멜랑콜리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소설 | 구소영 옮김 | 알마 | 536쪽 | 2만2000원

☞유령 서커스단의 등장으로 벌어지는 공포 환상극.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소설 | 노승영 옮김 | 알마 | 768쪽 | 3만1000원

☞도스토옙스키 ‘백치’의 재창조이자 4부작의 완성.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대표작 ‘사탄탱고’(1985)는 소설보다 영화로 더 유명하다. 헝가리 작가주의 거장 타르 벨라 감독의 이 흑백 영화는 롱테이크로 악명이 높다. 러닝타임이 무려 7시간 30분에 달한다. 이 때문에 “고통스러운 영화”라는 평을 듣지만 동시에 “아름답다”는 찬사를 듣는다. 황량한 풍경을 비춰 절망적인 삶의 분위기를 담았다. 그러나 삶이란 절망 속에서 추는 춤. 끔찍하지만, 때론 아름답다. 그런 점에서 타르 감독은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난해한 소설을, 난해한 영화로 적확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산주의 붕괴 직전 헝가리 농촌이 배경이다. 소설은 극도의 가난을 버티며 살아가는 집단농장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비춘다. 지독한 만연체가 어지러이 이어지는 가운데 음울한 분위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묵시록의 대가답게 세계는 종말을 앞둔 것 같다. 사람들은 종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주변엔 교회도, 종도 없는데 말이다. 어쩐지 불길하다.

모두가 죽은 줄 알았던 이리미아시와 그의 조력자 페트리너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마을은 술렁인다. 조원규 번역가는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의 등장 장면을 가리켜 “소설이 메시아적 알레고리 면모를 띠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아무 근거도 없이 희망을 본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흥분한 사람들이 거미줄투성이인 술집에 모이기 시작한다. 이들은 술에 취해, 아코디언 음악에 맞춰 흥청망청 춤을 춘다. 마을의 구원자처럼 여겨지는 이리미아시는 마을 사람들의 감정을 교묘히 이용한다. 그는 가짜 메시아였다.

동구 공산권이 해체되기 이전에 발표된 작품인 점을 고려하고 읽으면 보다 풍부한 해석이 가능하다. 공산주의 시스템의 허상을 폭로하는 소설로 읽을 수 있다. 물론 크러스너호르커이가 좋아할 만한 독해는 아닐 것이다. 그는 과거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나는 한 번도 정치 소설을 쓰고 싶었던 적이 없다”며 “공산 정권에 대한 저항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 저항은 사회 전체를 향한 것”이라고 했다.

상영 시간 7시간 반에 달하는 타르 벨라 감독의 기념비적 영화 ‘사탄탱고’(1994) 후반부 한 장면. 메시아의 출현에 들떴던 집단 농장 주민들이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황량한 흙길을 쓸쓸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담았다. ‘사탄탱고’ 미출간 원고를 본 타르 감독이 크러스너호르커이를 설득해 영화를 만든 일화가 유명하다. /Luxbox

‘사탄탱고’는 2부 구성이다. 1부는 1~6장까지 차례로 진행되고, 2부는 6~1장으로 역순으로 되돌아온다. 쳇바퀴 같은 고통의 굴레를 탱고의 스텝(앞으로 여섯 스텝, 뒤로 여섯 스텝)에 빗댔다. 탈출구가 없는 듯한 부조리하고 억압적인 카프카풍이 작품 전반에 흐른다. 소설이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라는 머릿말 인용으로 시작하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 아래 명기한 F.K. 이니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는 프란츠 카프카의 ‘성’에서 가져온 것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과거 여러 매체와 인터뷰에서 카프카를 자신의 문학적 영웅으로 꼽았다.

주요 4부작으로 꼽히는 ‘저항의 멜랑콜리’(1989) ‘전쟁과 전쟁’(1999·국내 미출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도 이런 분위기를 따른다. ‘저항의 멜랑콜리’는 고래 사체를 전시하는 유령 서커스단의 등장으로 빚어지는 광기와 공포의 환상극이다. ‘벵크하임…’은 망명 생활을 마친 남작이 헝가리로 돌아오는 이야기. 그러나 고향엔 배신과 절망이 가득하다. ‘벵크하임…’은 작가 자신이 꼽은 4부작의 완성체다.

2025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Niklas Elmehed ©Nobel Prize

9일 수상 직후 한림원과 전화 인터뷰에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자신의 가장 큰 문학적 영감은 “신랄함(bitterness)”에서 온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 세상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면 무척 슬프다. 이토록 어두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판타지가 없다면 삶은 완전히 다를 것입니다. 책을 읽는 일은 우리가 이 지구에서 맞는 아주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