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눈으로 본 인류의 역사
야우켜 아크벨트 지음 | 뎨네 필라 그림 | 정신재 옮김 | 원더박스 | 96쪽 | 2만7000원
대왕판다는 살아있는 개체 수가 2000마리도 되지 않는 멸종 취약종이다. 중국은 이들을 ‘우정의 상징’이라며 다른 나라에 선물하는 ‘판다 외교’를 한다. ‘선물’이라지만 10~15년의 시한부 ‘대여’. 외교 마찰이 일어나면 도로 뺏기도 한다. 호주는 ‘코알라 외교’를, 인도네시아는 ‘코모도왕도마뱀 외교’를 한다.
살던 곳을 떠나 낯선 땅 낯선 환경에 던져지는 당사자인 동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에게도 인간의 이런 행동이 ‘외교’ ‘우정’ ‘선물’일까.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면 판다는 뭐라고 항변할까. “우리는 무슨 상징도 아니고 선물도 아니야. 너희 인간들은 왜 그리 제멋대로인 거지?”
지금 행성 지구 위에 80억명 넘게 사는 현생 인류는 불과 20여 만년 전 나타난 생물종이다. 그 시절 지금 보츠와나라고 불리는 아프리카 중부에 살던 작은 영양 종 ‘딕딕’의 어미는 두 발로 서서 걷는 낯선 동물들을 보며 새끼에게 말한다. “표범과 하이에나에겐 이빨과 발톱이 있지만, 저들은 제 힘만으로는 해칠 수 없어서 막대기나 돌로 우릴 죽이지. 저들에게서 눈을 떼면 안 돼. 가장 큰 위험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어.”
지금은 현재의 아르헨티나에서 사라진 1만4000년 전 자이언트땅늘보는 덩치가 크고 느려 인간의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신석기 혁명이 시작된 뒤 인간은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는데, 6000년 전 지금의 페루 지역에 살던 알파카도 그중 하나였다. 인간이 기르면서 가축은 야생 조상으로부터 변형돼 돼지, 소, 닭, 양이 되었다.
기원전 30년 클레오파트라가 그 독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유럽살모사는 “우린 이집트가 어딘지도 모른다. 그 얘긴 전부 엉터리”라며 비고, 3세기 로마로 끌려온 사자는 “기독교인을 죽여!”라는 군중의 외침 속에 원형극장에 끌려나와 인간을 물어 찢는다.
비단실을 잣던 6세기 중국의 누에는 그리스 정교회 수도사들이 자신들을 훔쳐 나올 때 대나무통에 갇혔던 불쾌함에 관해, 말은 11세기 살찐 정복왕 윌리엄을 등에 싣고 잉글랜드의 전쟁터로 내몰렸던 고통에 관해 말한다. 살인죄로 법정에 세워져 사형에 처해진 15세기 프랑스 돼지의 새끼들이, 인간이 왜 자신을 숭배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인도의 소, 1차 대전 전쟁터에서 소식을 전하던 비둘기, 미국의 로켓에 실려 우주에 다녀온 침팬지가 제 눈에 비친 인간에 관해 들려준다.
네덜란드에서 그해 가장 뛰어난 일러스트레이션에 주어지는 황금붓상을 받은 책.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그림이 고급스러워 꼼꼼히 살펴보게 되고, 역사적 사실을 엮어 동물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문학적 언어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해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비인간 존재인 동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인간의 역사는 이만큼 다르게 쓰여질 수 있다.
1994년 르완다에서 인간들은 종족 분쟁으로 80만~100만명을 서로 죽일 때, 북쪽 비룽가 산맥의 산악고릴라들 사이엔 흉흉한 소문이 돈다. “인간들이 드디어 미쳐버렸어. 원래도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인간은 이곳에서 오랫동안 고릴라 새끼는 잡아다 동물원에 팔아넘기고, 어른 고릴라의 손은 잘라서 인기 기념품인 재떨이로 팔았다. 인간과 인간이 서로 죽이는 동안, 고릴라들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2019년 중국,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7억7720만명이 감염돼 709만명이 사망(질병관리청 통계 기준)한 코로나 사태의 ‘감염원’으로 지목되는 말레이시아 천산갑은 피와 배설물이 뚝뚝 떨어지는 좁은 철망 안에 갇힌 채 묻는다. 탐식(貪食)을 위해 야생 동물을 잡아다 뒤섞어 비위생적으로 방치하고 잡아먹은 건 너희들 인간이 아니냐고. 인간은 뭐라고 항변할 수 있을까.
이제는 동물이 말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