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산사'를 쓴 윤설희

“오래오래 살 집을 짓는 게 꿈이었어요. 10여 년 이사에 지쳤거든요. 우리나라 오래된 건물들의 비결이 궁금해졌어요. 그게 절이더라고요. 그래서 주말마다 산사(山寺)로 떠났습니다.”

5년간의 산사 여행을 담은 에세이 ‘주말엔 산사’(휴머니스트)를 쓴 윤설희(34)씨가 말했다. 저자는 공간을 갈망했다. 방을 예쁘게도 꾸며보고 근사한 카페에도 가봤다. 기쁨의 유통기한이 생각보다 짧았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저자는 10년 차 삼성전자 디자이너다. 주로 휴대폰 박스를 디자인한다. 그 역량을 살려 책에는 저자가 직접 펜으로 그린 그림들이 가득하다. 0.05㎜, 0.1㎜ 얇은 펜으로 그린 빼곡한 점, 세밀한 선에선 목탁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듯하다. 저자가 찾은 절만 100곳이 넘는다. 책은 산사와 절의 구성 요소를 쉽게 풀어 설명하는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책 속 등장하는 '금산사'/휴머니스트

“우리나라는 산사마다 모습이 다채로워요. 그중 개성이 뚜렷한 일곱 곳을 꼽아 책에 담았어요. 조각 테마파크 같은 운주사, 시원한 풍경의 부석사 같은 곳들이요.”

책에는 사진보다 그림이 많다. 절의 누각·석탑부터 건축 양식까지 세밀한 시선이 돋보인다. 여행을 기록하는 도구로서 사진과 그림은 어떻게 다를까. 저자는 관찰력의 차이를 꼽는다. “그리면 주변이 더 자세히 보여요. 기억도 생생하게 오래 남고요. 절에 앉아 그림을 그릴 때야말로 장소를 가장 오래 음미할 수 있어요.”

종교는 없지만 절에서 “집착을 내려놓으라” 같은 불교의 가르침을 만났다. 여로(旅路)는 수행의 길이 된 듯했다. 저자의 목소리엔 어떤 깨달음이 담겨 있었다.

“건강할 때 찾은 절은 참 아름다웠어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땐 감흥이 없었고요. 내가 튼튼하고 단단하게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제는 집이 중요한가 싶어졌어요. 나를 몰라서 이것저것으로 내 삶을 채우려 했던 것 같아요. 내가 꽃이라면 꽃밭이 따로 필요 없잖아요?”

올가을, 어느 산사로 떠나면 좋을까. “운길산 수종사가 좋아요. 11월 중순, 아침 8시를 권합니다. 500살 넘은 샛노란 은행나무, 물안개 자욱한 두물머리 장관을 만날 수 있답니다.”

/휴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