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의 법칙
데이비드 롭슨 지음 | 김수진 옮김 | 까치 | 424쪽 | 2만2000원
“내향인과 외향인 모두를 위한 인간관계 전략”. 책 띠지의 소개 문구를 읽고 이 책이 불가능에 도전하는 건가 잠시 생각했다.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고갈되는 내향인과 사람을 만나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외향인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인간관계 전략이 있다고?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전제를 무너뜨리면 된다. 내향인과 외향인이나 마음 깊은 곳의 욕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연결’을 지향한다. 어떻게 연결을 만들고 유지할 것인가에 관한 팁(tip)은 내향인과 외향인 모두에게 이롭다.
◇헬스장 가는 것만큼 중요한 ‘연결’
첫 장부터 현대인의 가장 큰 관심사인 ‘건강’을 미끼로 던진다. “사회적 연결은 통증을 완화하고, 염증을 감소시키며, 혈전 발생 위험을 떨어뜨린다.” 근거 있는 말이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모든 주장에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것. 영국의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300편이 넘는 심리·과학 학술 논문을 검토했다.
저자는 “연결이 보약”이라며 “사회적 유대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일은 새로운 헬스장에 회원 가입을 하거나 하루에 다섯 가지 과일과 채소를 먹거나 예방접종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한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사회성을 키워야겠다고 설득당하는 순간, 책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과 “작위적인 수다”를 떨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인맥을 마구 뻗쳐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양보다는 질. 저자는 자신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 깊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라고 조언한다.
◇내밀한 이야기는 ‘TMI’가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진정으로 이해받고 싶어 한다. 상대방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한다고 느끼면 호기심이 동하고 애정이 샘솟는다. 이 과정에서 신뢰 관계가 형성되고, 더 나아가 ‘공유 현실’이 만들어진다. 타인과 내가 같은 세계를 사는 것 같은 느낌이다. 피상적인 대화로는 도달하기 어렵다.
미국 심리학자 아서 에런의 ‘빨리 친구가 되는 법(일명 사랑에 빠지게 하는 36가지 질문)’ 실험을 살펴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하루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같은 자기 노출 정도가 높은 질문으로 45분간 대화를 이어간 실험 집단의 친밀도가 “고등학교는 어디 나오셨나요?” 같은 단순한 질문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눈 집단보다 더 높게 나왔다.
나에 관한 내밀한 이야기가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과한 정보)’ 아닐까 생각하며 자기 검열하는 이가 많을 테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는 편견이다. 자기 자신을 노출하면 듣는 이가 지루해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 노력을 기울여 내 감정과 의도를 표현하는 법에 대해서도 고민하라고 말한다. 가만히 있어도 남들이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자기 노출도 적당히, 요령껏
인간관계에선 융통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자는 자기 노출과 열린 마음으로 임하는 대화의 이점을 강조하지만, 단서를 단다. “모든 종류의 자기 노출에는 요령과 재치가 필요한 법” 한 가지 예로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노출은 지양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대화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을 치켜세우기 쉽다.
뼈 때리는 분석도 있다. “누구나 영혼의 단짝과 자신의 짐을 나누고 싶다는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각자의 감정을 서로에게 하소연할수록, 장기적으로 보면 두 사람 모두 결국에는 더 불행해진다.” 나쁜 감정을 함께 곱씹는 최악의 상황. 파국으로 치닫는 커플들이 눈앞에 그려진다. 슬픔과 불안을 나누며 ‘유해한 공유 현실’을 키울 필요는 없다. 이럴 땐 거리 두기가 더 요긴하다.
각 장 끝에 일목요연하게 ‘핵심 정리’가 실린 것도 자기 계발서로서는 강점이다. 타인을 믿고, 나를 드러내고, 역지사지 자세로 임하면 대체로 이로운 사회적 연결망을 갖게 된다는 낙관적 주장에 갸웃거릴 때도 있다. 그러나 탄탄한 데이터와 검증된 연구 결과가 뒷받침하니 인간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갈지 고민하는 이들에겐 참고할 만한 요긴한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