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작은 농장에서 시작된 한 소녀의 이야기가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도 벌써 한 세기가 넘었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 1908)은 무엇보다도 낙관적 상상력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열한 살 고아 소녀 앤 셜리는 그린 게이블스 농장의 매슈와 마릴라 남매에게 입양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본래 이들이 원했던 건 농장 일을 도울 남자아이였다. 앤은 ‘실수’로 농장에 오게 된 셈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 ‘실수’야말로 매슈 남매에게 일어난 가장 큰 축복이었다.

항상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앤의 비결은 바로 그가 지닌 낭만적 상상력에 있다. 평범한 숲길을 ‘환희의 하얀 길’이라 부르고, 벚나무를 ‘백설공주’라 명명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마법 같은 세계로 변화시킨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앤에게 상상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아름답게 만들고 자기 운명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창조적 힘이다. 이러한 힘을 지녔기에 앤은 좀처럼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물론 앤은 완벽한 숙녀가 아니다. 때론 성급하게 굴며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학교에서 ‘홍당무’라고 놀림을 받자 석판으로 길버트의 머리를 내리치는 장면은 앤의 격정적인 성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앤은 미워할 수 없는 아이다. 다이애나에게 주스인 줄 알고 포도주를 대접한 일이나, 머리를 초록색으로 염색하는 사건, 시 낭송 대회에서의 실수 등 앤이 보여주는 ‘빈틈’에 되레 독자는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다.

‘빨간 머리 앤’이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이유는 팍팍한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정신적 풍요로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기 때문은 아닐까. 앤처럼 낭만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평범한 일상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터다. 또 좌절 앞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운명애(運命愛)를 마음에 품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앤은 책장을 펼치는 독자에게 언제까지고 말을 건넨다. 실수해도 괜찮아,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