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기 단편집 ‘법의 체면’(황금가지)은 호연정 변호사의 사무실에 장물아비 변상일이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눈길을 끌지 않는” 장물 취득 사건을 연정이 맡게 된 것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노인 앞에서 거절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무죄’보다도 ‘후회 없이 갈 수 있다’는 위안이 이 의뢰인의 소망 아닐까 생각한 호연정은 사건을 맡고, 예상대로 실패한다. 상고 기각이라는 결말. 그러나 그것은 이 소설의 진짜 결말이 아니다. 변상일이 호연정을 찾아온 것이 이 소설의 진짜 출발점이 아니었던 것처럼.
인과관계가 없는 듯이 보였던 사건들이 진짜 결말에 이르면 하나로 모이면서 놀라운 표정을 만든다. 도진기 작가의 소설답게 엎치락뒤치락 전복의 묘미가 돋보이는데, 마지막 몇 페이지는 충격의 연속이다. 요약 불가. 반드시 독자가 직접 노를 저어 가닿기를 권한다. 음주 운전, 장물 취득, 살인 등이 빠르게 얽히는 가운데, 호연정 변호사가 감지하는 미묘한 신호들을 따라가는 재미도 상당하다. 이를테면 용의자의 지문까지 확보된 살인 사건인데 왜 검사가 얼른 기소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심인데, 그 머뭇거림 뒤에 도사리는 이유를 알고 나면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재미나게 읽은 소설 ‘완전범죄’에 이르면 그 당혹감이 배가된다. 과실치사로 송치된 사건이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기소되는 과정과 재판의 흐름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결말에 이르면 엄청난 반전이 뛰어든다. 법정에서 오가는 몸짓 언어, 어쩌면 판단하는 이 스스로도 모르고 있을 선입견, 미세해 보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이러한 균열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도진기 작가가 판사와 변호사 두 세계를 모두 오갔기에 가능했던 발견일 것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판사들한테 멱살 잡힐 글’이라고 밝혔지만, 이 책을 더 많은 법조인이 읽었으면 좋겠다. 법에 대해 누구보다 고민할 이들이기에 더더욱. 법정이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 후에도 그 자리를 평생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게를 함께 읽어내야 한다. 특정 구간을 계속 복기하는 사람들의 괴로운 리플레이를, “법이라는 것에 한 방 먹이고 싶었습니다”(66쪽)라고 울부짖는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