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사진이 크게 인쇄된 띠지 얘기부터 해볼까. 출판사에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겐 이 띠지가 장애물이었다. 로버트 M. 새폴스키가 ‘세계 최고의 신경과학자’ ‘우리 시대 최고의 과학 저술가’로 칭송받는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그의 얼굴이 유혹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카를 마르크스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과 수염이 너무 근엄해 보여 내용도 참 무겁겠거니 하고 겁을 먹었다. 1040쪽짜리 책 ‘행동’(문학동네)은 실제 무게도 1.7㎏이 넘는다.
나처럼 표지 앞에서 독서를 망설이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내 경우 표지 뒤로는 아무 고비가 없었다. 분명 두껍고 묵직한 내용을 담았지만 저자의 빼어난 유머 감각 덕분에 페이지는 술술 넘어간다. 나중에는 띠지를 봐도 마르크스보다는 작고한 코미디언 로빈 윌리엄스가 떠올랐다.
새폴스키는 인간 개인과 집단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최신 신경과학의 이론으로 설명한다. 왜 청소년은 그렇게 무분별하게 굴까, 왜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잘 공감하는데 어떤 사람은 그러지 않을까, 불평등한 사회는, 일신교는, 범죄는, 전쟁은 왜 생길까, 왜…. 동시에 저자는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은…’으로 시작하는 각종 설명들이 얼마나 오해로 가득한지 짚는다.
‘사랑 호르몬’이라는 옥시토신은 자민족 중심주의와 외국인 혐오를 부추긴다. 인간은 전형적인 일부일처 종에도, 일부일처 종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신경 전달 물질은 맥락 의존적이며, 어떤 행동의 생물학적 측면과 문화적 측면은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는 혼란스러운 종이다.
곳곳에서 맞닥뜨리는 통찰과 유머도 즐거웠지만, 나는 책 앞뒤의 다소 모순되게 들리는 두 주장이 가장 흥미로웠다. 한 가지는 세상사 전부를 신경과학으로 설명하려는 최근의 지적 유행을 저자가 ‘신경과학의 패권’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비꼰 대목이다. 다른 한 가지는 뇌 결정론에 입각해서 현재의 형사사법 제도를 강하게 비판하는 결론부의 도발이었다. 후자에 대해 좀 더 듣고 싶은데, 아직 번역이 안 된 후속작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고 한다. 기다릴 수밖에. 이렇게 팬이 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