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읽는 일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요. 그냥 책이나 영화와도 전혀 다르죠. 어른은 단어를 읽지만 아이는 글로 언급되지 않은 것, 어른은 눈치채지 못한 걸 찾아내고, 그걸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앤서니 브라운전(展):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 전시장에서, 영국의 그림책 거장 앤서니 브라운이 함께 한국에 온 손주들에게 전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태훈 기자

기술 발전 속도에 눈이 핑핑 돌듯한 인공지능(AI) 시대. 아이는 어떻게 ‘창의력 대장’ ‘상상력 부자’로 자랄 수 있을까. 기발한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마법사라 할 영국의 그림책 거장 앤서니 브라운(79)은 13일 본지와 만나 “함께 그림책 읽기는 부모와 아이를 더 가깝게 만들어주는,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라고 했다. “아이와 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 생각에 귀 기울일 수 있어요. 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지만 그건 일방적인 과정이죠. 반면 그림책은 양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브라운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앤서니 브라운 전(展):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 전시를 기념해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왔다. 6년 만의 방한이다.

/아트센터 이다

내년이면 첫 그림책 ‘거울 속으로’(1976)를 낸 지 50년. 그동안 펴낸 그림책은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2024)까지 총 57권이다. 그동안 영국인 최초 수상인 ‘아동문학 노벨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2000년)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의 그림책을 못 본 사람은 있어도 그가 그린 침팬지와 고릴라를 못 알아볼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른들은 그의 책 속 초현실주의적 요소나 시각적 은유를 어려워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열광한다.

어떻게 국경과 인종을 넘어 세계의 사랑을 받는 걸까. 그는 “어쩌면 내가 늘 ‘약자’라 불리는, 가난하거나, 어려움과 걱정, 불안을 가진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전부 다르지만, 또 어디에 살든 비슷한 걱정과 고민을 해요. 제 그림책은 가르치려 하지 않습니다. 외로움 혹은 친구들의 괴롭힘에 관한 책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어요.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이 타인의 입장에서 다름과 다양성을 상상하고, 의미와 이유를 생각해보길 바랄 뿐이지요.”

/아트센터 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이제 종이책보다 스마트폰에 더 익숙해지고 있다. 그림책은 미래에도 계속 사랑받을까. 그는 “수없이 고민해 본 질문”이라고 했다. “분명 그림책은 위협받고 있어요. 출판사들도 조바심을 내며 예전에 성공했던 것과 비슷한 책을 자꾸 내려고 하죠. 불안하고 걱정도 돼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같은 이야기도 애니메이션으로 본다면 움직임을 좇느라 이미지에 집중할 수 없어요. 반면 그림책을 읽을 때는 스스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지요. 그림책의 힘은 대체 불가입니다.”

/아트센터 이다

이번 전시엔 그의 그림책 원화 총 260여 점이 전시 중이다. 2023~2024년 출간된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 ‘우리 할아버지’ ‘나와 스크러피, 그리고 바다’의 원화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15~17일엔 독자 사인회도 연다. 전시는 9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