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독자의 눈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이라면 여름휴가가 조금은 특별해질지도 모른다. 출판사에서 책 홍보, 굿즈 기획 등을 맡는 ‘출판 마케터’는 독자와 출판계의 접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직접 책을 만들지 않는 터라 “우리는 독자의 시각에서 책을 본다”고 말한다.

Books는 출판 마케터 다섯 명에게 ‘올여름 휴가에 보면 좋을 책’을 두 권씩 추천받았다. 나와 주변을 돌아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 담겼다.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스릴러 장편소설도 있다. 당신의 마음과 가까운 이들이 건넨 이 책들이 여름의 조용한 쉼표가 될 것이다.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

권성민 지음|돌고래|356쪽|1만9500원

태도에 관하여

임경선 지음|토스트|352쪽|1만8000원

지난 겨울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친 뜨거운 논쟁 속에서 시시각각 뉴스가 쏟아졌다. 수많은 다름을 봤고, 충돌을 겪었다. 사건이 일단락되었다고 말하기엔 계급, 진영, 이념 갈등이 끝없이 극단으로 향하고 있다. 계절을 지나 숨 고르기를 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수많은 다름이 표출된 지난겨울일지도 모른다.

‘커뮤니티에 입장하셨습니다’에는 국가란 커뮤니티 속 여러 갈등을 이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쓴 권성민 작가는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 예능 프로그램인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를 기획·연출한 PD이기도 하다. 프로그램은 이념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과정을 담았다. 11부작에 다 담지 못한 한국 사회 갈등 축인 정치, 젠더, 계급, 사회 윤리를 둘러싼 쟁점을 책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책은 어떤 이념이 더 옳고 그른지 규정하지 않는다. 이념이 형성되는 경험적 맥락을 보여준다. 각자 주장만 놓고 보면 서로 끊임없이 부딪혀야 한다. 하지만 과정을 함께 보면 이해할 여지가 생긴다. 어떤 태도로 상대를 마주하느냐에 따라 폭력이 될 수 있고, 존중이 될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엮이고 부딪힌다. 중요한 건 어느 진영에 서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다. 결국 관계 속에서 주체적인 의사 결정권을 가지려면 스스로가 온전한 태도의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한다.

임경선 작가의 ‘태도에 관하여’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참고서 같은 책이다. ‘지침서’라는 흔한 단어를 쓰지 않은 이유는 누굴 가르치려 하지 않는 글의 태도 때문이다. 20만 부나 팔렸는데도 아직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다는 건 시대가 지나도 불변하는 태도가 있다는 걸 방증한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타인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쉽다. 나 자신을 정직하게 보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우리는 때론 누군가를 쉽게 재단한다. 하지만 그건 위험한 낙인이 될 수 있다. 그전에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기 이해는 타인을 포용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건강한 관계는 온전한 태도를 갖추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와 우리를 연결해주는 이 두 책이 지난겨울을 지나온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답은 휴가지에 있는 당신이 내릴 차례다.

/박중혁·흐름출판 마케터

몸, 내 안의 우주

남궁인 지음|문학동네|516쪽|2만3000원

편안함의 습격

마이클 이스터 지음|김원진 옮김|수오서재|444쪽|2만2000원

출판사에 몸을 둔 터라 휴가 때 읽을 만한 책들을 물어보는 지인이 많다. 나는 일상을 벗어난 동안이라도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책들을 권한다. 돌아보는 것이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평소 몸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어디가 아프고 난 다음에야 몸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휴가 때라도 자신의 몸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펴보자는 의미로 몸을 다룬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첫째 책은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의 ‘몸, 내 안의 우주’다. 건물에서 떨어져 뼈가 보일 정도로 다쳤거나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는 중증 환자부터 손에 샤프심이 들어갔다고, 벌에 쏘였다고 놀란 사람들까지 무수한 이가 응급실에 실려 오거나 걸어온다. 이야기는 그들과 함께 시작한다. 의학 교양서지만 글 곳곳에서 응급실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드라마 보듯 읽을 수 있다. 작가가 몸을 ‘살아있는 우주’를 여행하듯 말하는 것도 몰입감을 더한다.

인상적인 건 여정의 종착지가 ‘내 몸’을 돌아보게 하는 과정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다가 내 몸, 가족의 몸을 자주 생각하게 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것도 필연적이다. 이 책의 효능이다.

마이클 이스터의 ‘편안함의 습격’도 시작은 ‘몸’에 대한 것이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작가는 자신의 몸을 알래스카로 던져버린다. 한 달여 동안 오지 체험을 하기 위해 떠난 것이다. 그곳은 놀랍도록 불편하다. 배고프고 춥다.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 그곳으로 기어코 향한 건, 스마트폰이나 패스트푸드 등이 제공하는 편안함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의 끝에서 작가가 대단한 성찰을 얻거나 하지는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도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 다만, 아내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 “편안해 보인다.”

‘몸, 내 안의 우주’와 ‘편안함의 습격’은 몸을 말하면서도 더 잘 살기 위한 다짐과 마음을 단련하는 방법을 담았다. 여정에서 돌아와 영위할 일상을 좀 더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게 해준다고나 할까. 내 몸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안겨주는 책이니, 휴가철에 읽기에 더할 나위 없다. 책들이 꽤 두툼해 보인다고 미리 걱정하지 말기를. 재밌어서 한나절이면 읽을 수 있다.

/정민호·문학동네 기획마케팅 국장

치유의 빛

강화길 지음|은행나무|384쪽|1만8000원

인생은 개처럼 사는 편이 좋다

크라테스 외 지음|서미석 옮김|유유|154쪽|1만4000원

여름이란 계절은 더위 때문인지, 상반기를 지났다는 심적 분주함 때문인지, 매해 기억이 흐릿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간다. 실제로 시간은 균등하게 흘렀을 것이고 매일매일은 비슷한 무게를 담아내지만, 이상하게 정리된 기억보다는 잔상으로 남는다. 이 계절의 속도감 때문에 많은 이가 휴가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잠시나마 붙들어 놓는다.

소개할 책 두 권은 문체, 주제 등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기묘하게도 여름의 여러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강화길이 쓴 ‘치유의 빛’은 고딕 스릴러로 분류될 장편소설이다. 스릴러는 여름 독자가 즐겨 찾는 장르이지만 이 책은 익숙한 방식의 공포나 미스터리가 아니다. 좀 더 깊고 차가운 개인의 고통과 내면으로 잠수한다. 이야기의 초입부터 ‘생존’은 질문의 대상이 된다. 서사 속 다양한 인물은 결국 무너지는 일상을 마주하게 되고, 고통의 끝에 혼자가 된다. 인간의 취약성은 고스란히 드러나고, 원인으로 지목된 내면의 기억은 자꾸 망각으로 도망친다. 소설은 끝에서 아주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망각하고 여기까지 온 것일까?” 그러면서 조용히 답을 건넨다. 내면의 공포를 건너 내면의 밤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영화 같은 서스펜스보다는 차가운 호수로 독자를 초대하면서 마침내 위로 같은 울컥거림을 꿈처럼 보여준다.

 ‘인생은 개처럼 사는 편이 좋다’는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犬儒學派) 철학자들에 대한 책이다. 강렬한 제목과 표지의 귀여운 개 그림 덕에 쉽게 손이 가는 철학서로, 견유학파의 지혜를 잠언집처럼 소개한다. 견유학파는 철학 분파 중 하나로, 인위적 사회 질서에 저항하면서 자연적 삶을 찬양하고 순응하며 살았다. 집 없이 항아리나 돌기둥 위에서 살기도 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 앞에서 “햇빛이나 가리지 말라”고 말한 디오게네스처럼 자유로웠다. 이들은 이런 맥락에서 ‘개의 삶’을 이상적으로 보았다. 개는 졸리면 자고, 좋아하면 꼬리를 흔들고, 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이처럼 단순하고 정직한 삶이야말로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참된 행복이라고 믿었다.

이 책들이 조금은 여름의 속도감에서 벗어나 독자들에게 기억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고, ‘개의 삶’처럼 자연스러운 존재 방식을 상상하도록 하면 좋겠다.

/정재경·은행나무 마케터

먼저 온 미래

장강명 지음|동아시아|368쪽|2만원

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이다 지음|반비|232쪽|1만9500원

여름. 더위를 잊게 만드는 무서운 이야기에 끌리는 날도 있고, 방학처럼 느슨한 쉼을 주는 이야기가 필요한 날도 있다. 서늘한 상상과 따스한 관찰을 오가는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국 이후, 바둑계가 AI의 등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너져 갔는지를 기록한 르포르타주다. 천재의 직관, 창의적 한 수라 불리던 감각들은 AI의 등장과 함께 차례로 ‘틀린 수’로 판명되고, 평생 쌓아온 바둑적 감각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을 기사들은 온몸으로 겪는다. AI로 바둑을 다시 배우지 않으면 한 판도 이길 수 없는 시대를 갑작스럽게 마주한 기사들 중 일부는 조용히 바둑계를 떠나기도 했다.

이 책은 단지 바둑계의 변화 혹은 몰락만을 다루지 않는다. 글 쓰는 인공지능이 하루에도 수백 편의 ‘위대한’ 소설을 쏟아내는 시대가 오면, 우리는 여전히 인간만이 예술을 만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다움’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믿어왔던 가치들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까. ‘먼저 온 미래’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와버린 100% 실화, 서늘한 현실의 기록이다. 이 여름,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오싹하게 읽히는 책이다.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게 창의성이든 문학성이든 뭐든 간에, 그걸 인간만 가질 수 있다고 말할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알파고가 주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서늘한 미래를 앞에 두고도 일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여름의 책이 한 권 더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이다가 쓴 ‘이다의 도시관찰일기’는 골목 화단, 버스 안 풍경, 오래된 간판 등 우리가 스쳐 지나온 도시 풍경들을 오래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따뜻한 안내서다. 가령 골목마다 붙어 있는 주차 금지 표지판이나 각양각색 엉성한 경고문들을 보다 보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렇게 궁금해진 것들을 우리는 더 이상 무심히 넘기거나 미워할 수 없게 된다. 책을 읽고 나면 바닥의 전단지도, 엘리베이터 공지문도 이전보다 오래,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여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읽은 두 권의 책을 냉탕과 온탕처럼 오가며 읽어보자.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조아란·민음사 마케팅 부장

다독임

오은 지음|난다|292쪽|1만7000원

다정소감

김혼비 지음|안온북스|228쪽|1만5000원

매해 이상기후로 우리가 알고 있던 더위에서 더 더워지고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불볕더위 속에서 숨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살갗은 따가울 만큼 햇볕에 익고, 습도는 호흡까지 무겁게 한다. 쏟아지는 땀으로 축축해져 무거워진 옷이 걸음을 붙잡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계절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어쩌면 에어컨 바람도, 시원한 음료 한잔도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정함이 아닐까. 한 줄기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다정한 말, 오래간만에 울리는 안부 문자 하나에 유독 마음을 살피게 된다.

오은 시인의 ‘다독임’은 제목처럼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문장으로 가득한 산문집이다. 저자가 고른 말들은 무겁지 않지만 가볍게 흘러가지도 않는다. 이마에 닿는 손바닥처럼, 잠깐의 침묵 속에 담긴 위로처럼 다가온다. 따뜻함이란 결국 사려 깊음이라는 걸 이 책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알려준다. 짧은 문장 하나가 긴 하루를 견디게 해줄 때가 있다. ‘다독임’은 그런 문장들이 담뿍 담긴 책이다. 어깨에 가만히 손을 얹는 듯한 다정한 시선, 그 침착하고 조용한 위로가 지친 마음을 따스히 다독여준다.

김혼비 작가의 에세이 ‘다정소감’은 우리가 몰랐던 일상의 풍경을 다정함이라는 필터로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야기마다 등장하는 인물, 사건, 물건에 대한 저자의 감각적이고 유쾌한 소감은 웃음을 머금게 하면서도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다정함이란 거창한 정의보다도, 결국 ‘그냥 그랬다’고 말할 수 있는 평범한 하루를 애써 기억하고 끌어안는 마음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다정함은 다음 날의 나를 좀 더 따뜻하게 해준다는 것도. 웃으며 읽다가 어느새 마음이 찡해진다. 유쾌함 속에 섬세함이, 섬세함 속에 따뜻한 시선이 있다. 사소한 일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법을 일러주면서도 마음을 말랑하게, 웃음은 둥글게 전해주는 책이다.

여름의 한복판에서 추천하고 싶은 두 권의 책은 모두 다정함을 품고 있다. 그러니 이번 휴가엔, 뜨거운 햇살을 피해 부드럽고 단단하면서도 다정함이 담뿍 담긴 문장을 천천히 펼쳐보기를. 어쩌면 이 계절의 더위를 견디게 하는 건, 책을 사이에 두고 건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최원석·소미미디어 마케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