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어떻게 인생의 무기가 되는가
벤 엠브리지 지음|이지민 옮김|RHK|412쪽|2만4000원
역경에 처했을 때 ‘나는 이야기 속 영웅처럼 시련을 극복할 거야’라며 마음을 다잡아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난관을 돌파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익숙한 이야기 플롯을 레시피 삼아 자신의 인생 이야기 구조를 다시 짜 보라는 것, 즉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프레이밍을 달리해 바라보라는 것이다. 뇌는 ‘예측 기계’라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면 진행 방향을 끊임없이 예측하고, 그 예측에 맞는 결말로 향하도록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종한다. 그러므로 인생을 ‘어떤 이야기’로 전환하면 인생의 결말 역시 그 이야기에 맞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세상의 이야기를 목표나 임무를 완수하는 퀘스트, 엉킨 것을 풀어내는 언탱글드(untangled), 신화에서 가져온 이카로스, 그리고 괴물, 불화, 약자, 희생, 구멍 등 여덟 가지 마스터 플롯으로 분류한다. 인류의 무의식엔 이미 이 플롯들이 내재돼 있다. 선사시대부터 이야기를 기억하고 내재화한 이들, 이야기로 타인의 행동을 예측한 사람들이 자연 선택에서 유리해 살아남았기 때문이란다.
‘퀘스트 마스터플롯’의 대표적인 사례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트로이전쟁이 끝난 후 오디세우스와 선원들이 귀향하며 각종 퀘스트를 수행하는 이야기다. 이 플롯의 주인공은 기이한 세상으로 향하면서 괴물과 싸우는 ‘영웅’이다. 그 여정에서 엄청난 유혹을 극복하고, 진퇴양난에 빠지며, 초월적 존재의 도움을 받는다. 고향에 다다른 오디세우스가 활쏘기 대회에서 아내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을 물리친 것처럼, 영웅의 이야기는 마지막 시련에서 절정에 다다라야 한다. 이야기는 시련에서 끝나지 않고 ‘인생을 갱신하는 목표’로 마무리된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가 천상낙원에서 여행을 마치도록 끝맺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재회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오즈의 마법사’ ‘로빈슨 크루소’ 전부 마찬가지다.”
저자는 “퀘스트 마스터 플롯은 우리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퀘스트 스토리의 영웅이 되겠다는 욕망 때문에 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한 예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2년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한 뒤 “우리는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이 일을 하겠다고 선택한 것”이라 말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이카로스 마스터플롯’에 해당한다. 태양에 닿겠다며 날아오르다 날개가 뜨거운 열기에 녹아내려 추락한 신화 속 이카로스처럼, 이 마스터플롯의 주인공은 인생에 불만을 가지고 유혹에 빠졌다가 탐욕의 결과 파멸한다. 그리고 파멸 뒤엔 자기 비난이 뒤따른다. ‘기생충’의 주인공 기우(최우식)는 가난한 현실에 불만을 품고 대학생인 척 속여 부잣집 가정교사로 취직했다가 주인집의 부(富)를 욕심낸 대가로 파국에 이른다.
단, ‘이카로스 마스터플롯’은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벗어나기 위해 숙지해야만 하는 서사다. 저자는 “누군가 이 마스터플롯을 자기 삶의 정황에 잘못 적용하고 자기 비난을 퍼부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고 말한다.
‘미운 오리 새끼’나 ‘신데렐라’는 ‘약자 마스터플롯’의 대표적인 예다. 이야기 속 영웅은 비범하나, 그 시작은 초라하다. ‘신데렐라’ 이야기가 신데렐라가 선한 자질을 죽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강조하듯. 이 플롯은 본질적 위대함이 내내 주인공 안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실현되는데, 그 과정에서 신데렐라의 ‘못된 언니들’처럼 영웅의 위대함을 알아채지 못하고 조롱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운명의 실현’ 뒤엔 왕자와의 결혼 같은 ‘보상’이 주어진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해지고픈” 이들이 이 플롯을 따라 인생을 재설계하면, ‘자기충족적 예언’ 효과로 보상을 획득할 수 있다.
심리학과 자기 계발의 경계에 있는 책. ‘내 인생을 어떻게 스토리텔링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학술 용어 없이 쉬운 언어로 쓰였지만 서양 고전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어야 무리 없이 책 내용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원제 The Stories of your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