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서
한여름과 한겨울 글·그림 | 권남희 옮김 | 책읽는곰 | 88쪽 | 1만8000원
첫 장을 펼치기 전에 먼저 ‘심쿵’에 주의하는 게 좋다. 세상 순진하고 따뜻한 펭귄 ‘한여름’과 무심한 척 세심한 고양이 ‘한겨울’이 주인공. 볼이 발그레한 펭귄이 꼭 안아주자 깜짝 놀라 온 몸의 털이 쭈뼛쭈뼛 서고 파란 눈동자가 동그래진 고양이가 말한다. “별안간 네가 나를 안아 주었을 때, 온 우주의 별빛이 내게로 쏟아졌어.”
노트북을 펼친 고양이 곁에서 베개에 코를 박고 엎드린 펭귄과 토끼들이 게으름을 피우며 뒹군다. 펭귄이 뭔가 맘 상한 일이 있어 뚝뚝 눈물을 흘리면 고양이는 먼 델 보며 딴청 피우다 맛있는 우유병을 슬쩍 펭귄 쪽으로 밀어 놓는다. 붉은 실타래에 칭칭 함께 감긴 듯한 꼴이 돼도 ‘우리가 인연이라 그런가 보다’ 웃어 넘기고, 우스꽝스러운 새우 튀김옷을 입은 듯 창피를 당하더라도 가슴을 쭉 펼 수 있다. 그건 다 둘이 함께 있는 덕분이다.
여행길에 기다리던 버스가 오지 않으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으면 되고, 눈앞에 있어야 할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엔 ‘잠깐 쉬었다 다시 오자’고 씩씩하게 말할 수 있다. 겹겹의 갑옷을 입고 여러 가면을 바꿔 쓰지 않아도 되고, 자신 없어 불안한 마음을 허세로 가리려 남을 공격할 필요도 없다. 그저 너와 함께라면.
일본에서 소셜미디어 팔로어 10만명이 넘는 작가의 6만부 넘게 팔린 책. 아이들은 캐릭터 일러스트처럼 귀엽고 솜털 이불처럼 포근한 그림에 먼저 빠져들겠지만, 함께 읽는 어른은 짧은 아포리즘처럼 쓰인 그림 곁의 글귀들에 먼저 눈이 갈지도 모른다. 일본 애니메이션 대사처럼 살짝 쑥스럽지만 위로가 되는 말들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내가 너에게 우주에서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곳이 되어 줄게. 네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이라던가, “진심이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그냥 그렇게 말해 줬으면 할 때가 있어. ‘넌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고” 같은 말들이 그렇다.
하지만 역시 그 어떤 말보다도 더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책 속 동물들의 ‘심쿵’한 귀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