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
밀란 쿤데라 지음|김병욱 옮김|민음사|132쪽|1만5000원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1929~2023)의 2주기(7월 11일)를 기념해 유고작이 나왔다. 쿤데라의 프랑스 망명을 도운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1931~2025)가 작가 사후에 산문 두 편을 엮었다. 프랑스 유명 출판사 갈리마르가 펴낸 인문·정치 잡지 ‘데바(Le Débat)’에 실린 글. 소품 같지만, 쿤데라 소설 미학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돼 준다.
1985년 발표한 ‘89개의 말’은 쿤데라만의 작은 사전 같은 산문이다. 해외에서 출간된 자기 작품 번역서가 “원문에 대한 불충실이 체계적”(이 표현은 쿤데라의 비아냥이다)이라 골머리를 앓던 작가에게 피에르 노라가 ‘애착 단어’를 직접 정리해 보라고 제안한 것이 집필 계기다. ‘절대(Absolu)’에서 시작해 ‘저속함(Vulgarité)’까지 총 101단어를 정리했다. 처음 잡지에 연재했을 땐 89단어였는데, 이후 12단어를 덧붙였다. ‘가벼움(Légèreté)’ ‘존재(Être)’ 등 쿤데라에게 각별할 법한 단어에 그만의 사유를 담았다.
1980년 잡지에 실린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에는 고국을 향한 애틋함과 절망이 담겼다. 프라하의 문화사는 이성보다 환상과 불합리의 계보에 속한다. 이런 전통이 카프카 같은 작가를 낳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948년 공산당이 일으킨 쿠데타와 1968년 소련 침공으로 프라하는 동유럽의 위성국으로 전락한다. 종교 개혁의 요람이자 바로크 문화의 수도였던 이 도시는 서유럽 문화의 중심지에서 변방으로 서서히 밀려난다. “안개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는” 도시를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씁쓸함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