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단정한 정장 차림인 여성 변호사에게 “빨리 집에 가 화장 지우고 목 늘어진 티셔츠 입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소위 ‘문신템(문신처럼 매일 착용하는 아이템)’인 티셔츠가 한 벌쯤 있지 않습니까. 비싼 것도, 예쁜 것도 아닌데 어쩐지 버릴 수 없는 낡아빠진 티셔츠가.

일본 저널리스트 쓰즈키 교이치의 ‘버릴 수 없는 티셔츠’(안그라픽스)는 이런 티셔츠에 관한 사연 70편을 사진과 엮은 책입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괜찮은지 별로인지 갈피가 안 잡히는’ 티셔츠에는 그걸 입는 사람의 확고한 의지나 근거 없는 자신감,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추억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쓰즈키는 독자들의 투고를 받아 매주 발행하던 뉴스레터에 ‘버릴 수 없는 티셔츠’에 대한 사연을 연재했다고 하네요.

의류 회사에서 근무하는 38세 동성애자 남성은 아베크롬비의 검정 티셔츠에 대한 사연을 적었습니다. “첫 번째 남자 친구가 내 집에 자러 왔다가 두고 간 티셔츠가 바로 이것이다. 옷장 정리를 할 때마다 버리려고 하지만, 추억이 너무 강렬해 버릴 수 없다. 이걸 보면서 가슴 아픈 첫 연애의 추억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입지는 않지만, 가끔 냄새는 맡는다.”

사진가인 27세 여성은 아르바이트를 같이한 동료들에게 퇴사 기념으로 받은 티셔츠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얇고 조악한 티셔츠에 본인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빨았다간 프린트가 다 지워질 것 같아 세탁을 포기했다고 하네요. 회식 때 흘린 간장 자국이 그대로 묻어 있지만 차마 버릴 수 없어 매번 꺼냈다가 다시 장롱 속으로 쑤셔 넣는다고요.

폭염을 견디기엔 면 티셔츠만 한 아이템이 없지요. 여름나기용 티셔츠를 몇 장 샀습니다. 이 중 어떤 것이 ‘버릴 수 없는 최후의 한 장’이 될지 궁금합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