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법치주의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 현재 한국 정치에선 법이 정권이나 정당의 이익, 시민들의 진영 논리에 따라 자의적이며 대립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어떤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자의적 통치를 방지하기 위해 법치주의가 발전했는데, 현금의 정치 사태는 법이 자의적 통치를 조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법이 특정한 인물이나 당파를 위해 제정된다면 이는 법이 지녀야 할 핵심적 가치인 일반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며, 이러한 법은 법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예컨대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선거법 위반 재판’을 무효화하려고 공직선거법의 개정을 추진하거나,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대법관 증원법을 추진하려는 민주당 일각의 입법 독재 행태는 법치주의의 위기에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기 때문에 법치주의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당면 과제이다.
현대 민주주의 이론의 발전에 기여한 정치철학자가 많지만, 그중에서 장 자크 루소는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사회계약론’은 정당한 정치 질서, 다시 말해 법에 따라 통치가 이루어지는 법치국가에 대한 청사진을 담고 있다. 루소는 법에 따라 통치가 이루어지는 국가를 공화국이라고 정의하는데, 그의 공화주의는 곧 법치주의이다. 필자는 ‘사회계약론’의 이해는 한국 법치주의의 위기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1조 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헌법 1조를 인용하면서 “국민의 주권의지가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헌법 1조가 어떤 역사적, 사상적 배경에서 유래되었는지에 관해 설이 분분하지만, 2항이 분명하게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명시된 국민주권설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헌법 1조는 루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법치주의, 민주주의, 공화주의의 위기에 대한 해법은 ‘사회계약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일반의지’이다. 루소는 정당한 통치의 법칙을 탐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법칙은 궁극적으로 일반의지에서 도출된 법으로 나타난다.
과연 일반의지란 무엇인가? 우선 일반의지는 개별의지와 구별된다. 개인은 자신의 개별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의지를 지닌 존재이다. 다양한 개인이 추구하는 개별 이익 간에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것은 모두에게 공통된 이익을 보장하는데, 일반의지는 바로 이 공통 이익을 추구하는 의지이다.
개인이 일반의지에 따라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복종하게 되면,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만든 법에 복종하는 것이 되므로 자유를 누리며 자기 이익을 향유하게 된다. 일반의지 속에서 공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서로 상호 이익을 고려하므로 평등이 보장되며 나아가 정의가 실현된다. 계몽이 되지 않아서 일반의지를 알지 못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자유롭게 되도록 강제된다.
주권자인 시민들의 일반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법률 체계는 최대선을 목적으로 하는데, 그것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지 주요 목적으로 수렴된다.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개인의 예속은 국가 단체의 약화를 가져오며, 평등이 중요한 이유는 평등이 존재하지 않고는 자유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루소의 평등 개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는 절대적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불평등한 현실을 인정하지만 빈부의 차이가 어떤 한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불평등의 해결책으로 사유재산제도의 폐지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법에 따라 빈부의 차이를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주권자가 만든 법률을 단순히 집행하는 단체이다. 정부는 법을 만드는 주권자인 시민과 법에 복종하는 시민으로서 신민을 매개하는 중간적인 단체의 성격을 지닌다. 루소는 주권자, 정부, 시민의 관계를 연비례식으로 표현한다. 주권자:정부=정부:신민⇒정부×정부=주권자×신민.
이 비례식은 강력해지려는 경향이 있는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 주권자인 시민의 역량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주권자의 명령을 받아 법을 집행하며, 신민은 정부의 명령(법률)에 따라 행동하지만, 수학적 비례식에 따르면, 정부는 강해지려는 속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법률을 집행하는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적 의지, 자기가 속한 행정 단체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단체 의지, 그리고 법률을 따르려는 일반의지를 갖고 있는데, 이들 통치자가 사적 의지를 앞세우고 일반의지를 경시한다면 법치주의 위기가 초래된다. 주권자인 시민은 통치자가 사익을 위해 권력을 강화할 수 없도록 항상 견제해야 한다.
또한 시민은 주권을 의회에 양도해서는 안 된다. 영국 의회가 잘 보여주듯이 시민은 대표자를 선출할 때만 자유로울 뿐, 선출이 끝나면 즉시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의지는 주권자 집회에서 표출되는데, 시민들은 이 집회에서 법을 만들며, 현 정부 형태의 유지나 변경 여부, 행정관에 대한 신임 여부를 결정한다.
루소는 집회가 열리는 순간, 주권자는 최고의 권위를 지니며, 국가의 기본법은 물론 사회계약조차도 폐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권자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존재이다. 그러나 일반의지는 단순히 다수의 의견이 아니다. 루소는 일반의지가 올바르게 행사되기 위해서는 시민이 계몽되어야 하고, 국가 내부에 당파나 부분적 집단이 없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계몽되지 않은 시민은 일반의지를 알지 못해서 포퓰리즘에 오도될 위험성이 존재하고, 당파나 부분적 집단들은 자신들의 편파적 의견을 마치 일반의지인 것처럼 호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소는 법치주의의 원천으로서 일반의지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표명한다. 그는 일반의지는 언제나 변함없이 존재하며, 타락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일반의지는 마음의 법인 습속, 관습, 여론, 그리고 양심과 이성의 자연법 속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론을 내려보자. ‘사회계약론’은 법치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 원칙은 시민들이 입법의 원천으로서 일반의지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유와 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공화주의적 법치주의를 실천하고, 주권자로서 정부를 견제하는 의무를 수행하고, 계몽과 교육을 통해 일반의지의 토대를 굳건히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루소가 일깨운 자유와 평등의 횃불, 일반의지의 횃불을 높이 쳐들고 정의롭고 행복한 나라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우리는 주권자로서 새로운 헌법의 제정, 나아가 새로운 사회계약의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