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일이 업(業)이라면, 휴가 때만큼은 책을 멀리하고 싶지 않을까? ‘책의 계절’(버터북스)을 펴낸 정지현씨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했다. 단행본 400여 권을 디자인한 베테랑 북 디자이너는 “여행지에서 서점이나 도서관에 갈 때면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했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오래 머물기 위해 문을 열기 전 줄을 서는 ‘오픈 런’도 마다하지 않는다. “책을 보다가 시간 보는 걸 잊어버려서 주인이 서점 문을 닫을 때 같이 나오는 경우도 몇 번이나 있었어요.”
책은 2018~2024년 7국 13개 도시를 여행한 기록이다. 프랑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처럼 널리 알려진 서점은 일부러 뺐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아우데만하우스포르트 중고 서점 거리, 레이던의 L. 반 바덴버그 예술서점, 독일 뮌헨의 라이너 쾨벨린 고서점 등 낯선 곳을 추렸다. 그는 “나 혼자만 보기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으로 엮게 됐다”며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서점이나 공간을 선별해 실었다”고 했다. 북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유럽의 도서관의 면면을 살피는 재미도 쏠쏠하다.
저자가 가장 애정하는 장소는 일본 사가시(市)의 양학당 서점. 예약 방문이 필수인 이곳은 고문서와 공예품이 가득해 작은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 다락방을 구경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곳이에요.” 여행자는 타국의 서점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정 디자이너는 “책을 매개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점과 도서관에서 그 도시의 디자인 수준이나 문화적 융성함 등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