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의 강남’(인플루엔셜)을 읽고 나서 차분히 인생을 되돌아봤다. 덕분에 저자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강남’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나도 꽤 길게 살았고, 결혼도 거기에서 했다. 아내와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결국 강남을 떠났다. 강남이 살기에 편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은데 ‘강남 좌파’ 소리 듣는 것도 불편했다. 나는 강북으로 이사 온 다음에야 삶의 행복을 찾았다.

책에서 재미있었던 것은 국방 관련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강남이 지금의 모습이 된 결정적 계기가 베트남 패망에 따른 안보상의 불안감”이었다고 주장한다. 6·25 때 한강 다리가 폭파된 후 황망했던 기억이 이때 사회적으로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강남에서 거주한다면 아무리 남침해온다 할지라도 부산까지 피란 갈 자신이 있다는 잠재의식”이 ‘강남 지향 의식’의 원형이라고 분석한다. 북한을 의식해 한강 다리들을 유사시에 쉽게 끊을 수 있게 설계했는데, 결국 성수대교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는 지적도 놀라웠다. 그린벨트 역시 표면적으로는 환경보호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국방상 이유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시절 정부는 물론 전문가 중 누구도 지금과 같은 강남의 모습을 생각하지 못했다. 출발은 국가 안보 계획이었지만, 이후엔 국민적 욕망이 만들어낸 지역, 그것이 강남이다. 지난 정부들에서 지방을 살리려고 각종 이름을 붙여 지방 토지를 매입 혹은 수용하면, 그 돈이 결국 강남, 아니 강남 아파트로 온다. 최근 도쿄 집값을 견인하는 도쿄의 고층 아파트들도 이 정도는 아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저자에게 향후 투자 지역에 대해 질문하겠지만, 그는 학자고, 그것도 고리타분한 문헌학자다. 저자의 학자적 미덕이 때때로 아름다운 문장이 되어 책에서 펼쳐진다. 88올림픽고속도로를 지하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홍수에 대한 대책이 없어지므로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는 재정 문제로 가당치 않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존댓말로 쓴 그의 문장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삼풍백화점 붕괴 때 추모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래서 수많은 문제가 생겨난 거 아니냐는 통찰에는 잠시 숙연해졌다. 강남에 살든, 그렇지 않든, 국민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강남은 이제 우리 모두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