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번아웃’이라는 말이 일상어로 자리 잡았다. 청소년들이 겪는 학습 부담과 치열한 대학 입시 경쟁으로 인한 정신적 소진은 오래도록 사회 문제로 여겨져 왔지만, 그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대학 졸업 후엔 취업이라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린다. 이런 현실 앞에 1906년에 발표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Unterm Rad)’는 놀랍도록 예언적인 작품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소년이다. 하지만 그는 경직된 교육 시스템하에 점차 본성을 잃어간다. 신학교에 입학한 한스는 과도한 학습량과 경쟁의 압박감으로 인한 신경 쇠약에 빠지고, 결국 물에 빠져 죽음을 맞는다. 작품은 이처럼 개인의 창의성과 인간성을 무시한 채 오직 성과만을 요구하는 교육 제도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헤세 자신도 이런 교육 시스템의 희생자였다. 목사가 되기를 바란 부모의 기대와 달리 “시인 이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자” 했던 그는 수도원 학교를 중퇴하고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일하며 독학으로 문학의 길을 걸었던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에, ‘수레바퀴 아래서’는 청년 헤세의 자전적 이야기라 할 만하다.
입시와 취업을 위한 경쟁 속에 꿈과 적성은 뒷전으로 밀리고 성적과 순위만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때, 삶은 수레바퀴 아래 놓인다고 작품은 경고한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한스의 친구 하일너를 통해 탈출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하일너는 개인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안적 인물이다.
소설 속 한스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지만 그 분신인 헤세는 하일너처럼 살아남아 작가로서 세계만방에 이름을 떨쳤다. 1946년에는 노벨상을 받았다. 교육이란 성공을 위한 도구인가, 아니면 한 인간이 자신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인가? ‘수레바퀴 아래서’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에 그는 자신의 삶으로 답했다, 우리가 수레바퀴 아래를 벗어나 향할 곳이 어디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