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은 열다섯 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졌지만, 이 책을 소설집이라 부르기는 망설여진다. 서술 시점과 등장인물이 계속 바뀌는 데다 이야기들 사이에 뚜렷한 연결 고리가 없으니 연작소설은 분명 아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붙인 명칭이 ‘모자이크 장편소설’인데, 낱낱의 조각들을 모두 합쳐 보아야 비로소 숨은 패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설의 공간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이고, 때는 1897년부터 1904년까지다. 이 시기 더블린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일어난 아일랜드 문예 부흥 운동과 독립 운동이 구체적 정치적 결실로 이어지면서 입장 차에 따른 온갖 갈등이 폭발했다. 정치가 종교와 불가분으로 얽혀 있었고, 각 파당이 경제 계층과 불가분으로 얽혀 있었다. 조이스는 이 ‘집안싸움’의 처절한 피해자였다. 그는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당했고, 스스로 조국을 등졌으며, ‘더블린 사람들’은 두 번이나 계약 파기를 당한 끝에, 처음 작품을 쓴 해로부터 10년 만에 겨우 출판되었다.

그럼에도 ‘더블린 사람들’은 조이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온건하고 서정적이며 가독성 또한 높아서, 난해하기로 유명한 ‘율리시스’나 ‘피네건의 경야’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여겨지곤 한다. 달리 말하면, 조이스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테마가 한결같이 더블린 사람들, 이 일가(一家)의 반목인 것이다. 그것이 아일랜드인의 자긍심을 고취시킬 멋진 이야기가 아니라서, 폐쇄적 사회의 “마비”된 군상을 묘사해 가족의 치부를 드러냈기에, 조이스는 몹쓸 패륜아가 되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파국의 카타르시스도 감동적 화해도 없이, 되풀이되는 일상을 무던히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가족 구성원들에게 부과되는 제일의 책무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더 무심히 서로 상처 입히고 분노하면서도 또 기어이 바로 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한다. 생활 습관과 취향을 넘어, 가치관과 신념까지 일체화하려는 불가능한 욕망을 꿈꾼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가족은 ‘화목한 가정’이라는 이상을 추구하므로, 지독한 상호 몰이해 가운데서도 부단히 조화의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 위선의 공동체고, 인간의 마음은 허약해서 차가운 진실보다는 다정한 거짓에 더 자주 위로받는다는 사실을.

이수은 독서가·'평균의 마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