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등기

잉마르 베리만 지음|신견식 옮김|민음사|380쪽|3만원

영화 감독들이 사랑하는 스웨덴 영화 거장 잉마르 베리만(1918~2007). 그가 생전에 쓴 자서전이 번역·출간됐다.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페르소나’(1966)를 비롯해 ‘제7의 봉인’(1957) ‘산딸기’(1957) ‘가을 소나타’(1978) 등은 영화 고전으로 꼽힌다.

자서전은 베리만이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최초 출간은 1987년이다. 해설을 쓴 잉마르베리만재단 대표 얀 홀름베리는 “시작은 다 허세에서 비롯된 듯싶다”고 다소 냉정하게 쓴다. 미 대형 출판사가 베리만에게 파격적인 선인세를 제안해 시작된 작업이라는 것.

자서전이지만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 과거와 현재를 자유로이 넘나들어 시간 흐름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의 영화를 보며 느낀 감각이 활자로 다가오는 듯하다.

손수 쓴 첫사랑, 첫 경험 이야기엔 ‘아무리 팬이라도 이것까지 알고 싶진 않은데’ 하는 마음도 잠시 든다. 그러나 베리만이 풀어내는 어린 시절 환등기의 영상을 도화지 벽면에 처음 비춘 날의 기억은 소중하다. 예술가의 운명을 직감한 최초 순간을 독자와 나눈다. “벽에서 덜덜거리던 직사각형 화면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수시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