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의 작약이 만개했습니다. 나흘 전 배달받았을 때만 해도 알사탕처럼 작고 단단하게 뭉쳐 있던 봉오리가 어느새 부풀어 올라 서너 배 이상 몸집을 키웠더군요.

작약은 조바심과 설렘이 함께하는 꽃입니다. 피지 못하고 이른바 ‘추파춥스 상태’로 시들어 버릴까 걱정되기도 하고, 한편으로 꽃송이가 얼마나 풍성해질지 가늠이 되지 않아 무한한 기대감을 주기도 하니까요. 많은 이가 작약을 사랑하는 건 ‘가능성의 꽃’이라서가 아닐까 합니다. 꿈이 피어오르는 장면을 형상화한다면 작약 꽃망울이 터지는 모습 같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작약 종류를 통틀어 일컫는 영어 이름 피어니(peony)와 라틴어 속명인 파이오니아는 모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치유의 신 파이온(Paeon)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신들의 의사였던 파이온은 올림포스산에서 작약 뿌리를 채취하여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의 상처를 치료하여 주어 스승인 아스클레피오스의 분노를 샀다. 평소에도 제자인 파이온을 심히 질투했던 아스클레피오스는 대로하여 그를 죽이려 했지만 제우스가 파이온을 살려 작약꽃으로 피어나게 했다.” 정원사 박원순이 쓴 ‘꽃을 공부합니다’(사이언스북스)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작약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약초로 쓰였습니다. 사랑의 증표로 여겨지기도 했지요. 주나라 제후국 중 하나였던 정나라에서는 삼짇날 봄놀이 때 서로 마음에 드는 상대와 작약꽃을 주고받았답니다. ‘시경(詩經)’에는 봄날 강가에서 젊은 남녀가 장난치며 서로에게 작약을 선물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습니다.

작약의 꽃말은 ‘수줍음’. 닫혀 있던 봉오리가 천천히 꽃잎을 펼치며 화려하게 피는 모습이 마음에 둔 이에게 쉽사리 고백하지 못하고 머뭇대는 마음과 닮았기 때문이랍니다. 작약이 지듯, 5월이 저물어갑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