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크리스틴 로젠 지음|이영래 옮김|어크로스|364쪽|1만9800원
기억을 되짚어 보자. 최근 새 식당을 방문할 때 맛집 앱이나 포털 리뷰를 찾지 않고 방문한 적이 언제인가. 스마트폰이 생기기 전, 우리 대부분은 놀랍게도 대부분 ‘그냥’ 식당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포털 리뷰가 넘쳐나는 세상에선 다르다. 이제 단 한 번의 나쁜 외식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특별히 베일에 싸인 누군가의 초대가 아니라면, 가게 방문 전 스마트폰을 켜 맛집 앱을 통해 평점을 확인하고 대표 메뉴를 숙고한 뒤 결정을 내리는 게 다반사다. 내 입맛에 맞지 않는 식당에 갈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새로운 식당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느낄 일도 없다. 손글씨는 드물고, 아이들은 자연을 경험하는 대신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먼저 민다.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우리는 확실히 더 편리한 삶을 살게 됐지만, 잃어버린 것도 있다. 미국기업연구소·버지니아 고등문화 연구소에서 기술과 문화의 상호작용 등에 관해 연구해온 저자는 이를 ‘경험의 멸종’이라 명명한다. 특히 “특정 유형의 경험들이 우리 삶에서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무심코 들어간 가게에서 뜻밖의 메뉴를 먹고 기쁨을 얻는 일’,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다가 만난 의외의 장소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 같은 것들이다. 디지털 기술 발전의 해로움을 경고하는 숱한 책 중에서도, 그 해로움을 ‘경험’이란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연 돋보인다.
우리 모두에게 인생 첫 번째 선생님은 ‘경험’이었다. 우리는 여러 식당을 다니며 그 공간과 분위기, 플레이팅과 염도 등 다양한 직접 경험을 통해 자신의 취향을 완성해간다. 물론 그 사이엔 숱한 실패도 있다. 비싸고 맛없는 식당, 조미료만 된통 쓰는 집…. 그러나 이를 통해서조차 ‘내가 이걸 싫어하는구나’를 배운다. 물리적 세계와 친밀감은 조금씩 줄어들고, 디지털 세계에 대한 애착은 커지면서 “이제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직접적인 경험보단 그에 대한 정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결과 기계화되고 균질화된 간접 경험만이 남는다. 비단 맛집뿐 아니다. 음악, 여행 등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이뤄져야 할 모든 일에 안정적인 선택지는 넘쳐나지만, ‘새로움의 충격’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저자가 경고하는 건 이런 경험의 약화 혹은 나아가 멸종이 ‘인간다움’을 없앤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면 의사소통 능력의 퇴화다. 우리는 문자메시지, 이메일, 소셜미디어 속 ‘좋아요’가 우리 감정의 솔직한 표현을 대신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저자는 최근에야 겨우 발달한 디지털 기호가 결코 인간의 얼굴과 몸을 대신할 수 없을 거라 본다. 인간은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할 때 다양한 생리적 반응을 얻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 강렬한 눈 맞춤은 심박수를 높이고, 인간의 중추신경계에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게 하며, 기분과 스트레스 조절에 관여하는 유기 화합물의 분비를 촉진한다.
‘인내의 미학’도 디지털 시대 대표적으로 실종된 분야다. 기다림은 언제나 삶의 중요한 일부였지만, 이제는 기다리는 거의 모든 순간을 스마트폰에 양도한다. 현대인은 점점 더 조급하고, 성마르다. 지금 같은 환경이라면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거린다’(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고 노래한 시인의 시는 이해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저자는 회의 중의 지루함, 막히는 버스에서의 불편함까지 모든 기다림을 수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다만 지루함을 견디게 했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의적 공상’이 시간을 죽이기 위한 ‘얕은 오락’으로 바뀌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 낸 순간은 전차를 타고 가면서 베른 탑을 보던 때였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기술 발전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Black Mirror)’를 떠오르게 한다. 저자의 주장이 극화한 드라마처럼 다소 일방적이고 과장되게 읽히는 지점이 있다. 아이 돌보는 게임에 빠져 실제 자신의 아이는 굶어 죽게 한 부부를 기술 발전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저자의 우려가 과도하다고 치부하기엔, 최근 본 1990년대 중반 서울의 거리 사진이 자꾸 떠오른다. 이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가 스마트폰이 아닌 앞을 보며 걷는다. 눈앞의 풍경을 보며 거리를 걷는 경험이 사라진 것만큼은 적어도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