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어린이날 군산에 놀러 갔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일본식 가옥과 오래된 식당들, 크고 잘 정돈된 로컬푸드 매장이 재밌었다. 그렇지만 같이 간 어린 아들들은 노스탤지어 가득한 군산의 시간 여행 마을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국GM 군산 공장 폐쇄 이후로 지역 경제가 매우 어렵다. 과연 도시 디자인이 지역 경제를 살릴 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김종균의 ‘모던데자인’(이유출판)은 여타 미술사나 미학 혹은 디자인 책과는 달리 한국 얘기에 꽤 신경을 쓰고 있다. 일종의 디자인 역사책 형식인데, 각 단계마다 한국과 일본의 흐름을 같이 다루었다. 맨 뒤에는 한국의 모던 디자인 역사를 직설법으로 다룬다. 우리의 심미관을 거침없이 해부한다. 서양에 대한 맹목적 추종, 독재의 선전장,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수용된 모더니즘 등 ‘뼈 때리는’ 이야기들이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김종균은 미키마우스 모양 빵에 대한 은유로 디자인의 여러 역사적 스타일을 설명하는데, 한국 디자인은 그냥 모방만 한 ‘미국산 사각빵’으로 요약했다
시대를 만든 디자인은 자신의 시대와 불화하며 미래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모더니즘의 중요한 한 축인 독일의 바우하우스였다. 이 디자인을 너무나 싫어한 나치가 강제로 폐쇄시켰다. 많은 인사가 유럽 각지와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디자인의 세계적 흐름이 크게 바뀌게 되었다. “한국 디자인에는 저항의 역사가 없다.” 김종균은 일제 강점과 전쟁의 상처가 깊었고, 스스로 뭔가를 바꾸기보다는 어느 날 갑자기 신고전주의와 모더니즘이 오고, 또 그렇게 포스트모던이 오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국내외로 많은 것이 바뀌는 시대, 한국의 디자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저출생과 제조업의 위기로 많은 도시가 위기에 빠질 것이다. 도시의 생존과 번영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드는 새로운 디자인, 그게 디자인의 역사다. 책을 덮고 나니 개성과 매력, 그리고 살아남겠다는 간절함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디자인을 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생겨났다. 그게 바로 한국식 디자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