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쁘게 눈부시기
서윤후 시집 | 164쪽 | 문학과지성사 | 1만2000원
서윤후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나쁘게 눈부시기’에는 ‘슬픔을 감광하는 어둠이 눈동자에 붙어서는 떨어지지 않는다’(‘나이트글로우’)라고 토로하는 화자가 자주 등장한다. ‘어둡고 깊은 곳’(‘미도착’), ‘내게서 가장 깊숙한 곳을 찾아’(‘흑백판화’) ‘더 초조하게 어둠에 대해 묘사’(‘나이트글로우’)하려는 시인의 시적 의지는, 시집 전반에 드리워져 있는 모종의 쓸쓸하고도 고독한 분위기의 진원지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시인이 발견하는 어둠이 단지 빛의 부재, 기쁨과 행복의 반대말로서의 단순한 슬픔과 불행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둠을 고집스럽게 응시하는 시인은 ‘불행이 스스로 갖춰 입은 어둠을 눈부시게 바라보는 사람’(‘조용히 분노하기’)이기도 하다. 이른바 어둠의 빛 혹은 눈부신 어둠이라는 역설의 형식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근원적 삶의 진실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한다. ‘햇빛이 모두에게 좋은 게 아니라면, 나의 찡그림은 어디에서 빛나고 있었을까.’(‘독화살개구리’)
찡그림이란 무엇인가. 울음과 웃음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표정, 경계 자체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순간의 얼굴이다. 이처럼 ‘나쁘게 눈부시기/ 풍경의 보온’(‘흑백판화’)은 명과 암, 좋음과 나쁨, 행복과 불행 등으로 명료하게 나뉠 수 없는 삶의 풍경을 새롭게 감각하는 행위이다. 만약 우리가 그 어둠을 함께 응시할 수 있다면, 슬픔 속에서 고요하게 빛나는 어둠의 아름다움을 함께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빗방울을 쪼개 열두 가지 슬픔을 만들고/ 나눠 가지면 우리는 날씨가 될 수 있단다’(‘아무도 없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