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 달콤씁쓸한
앤 카슨 지음|황유원 옮김|모호|320쪽|2만2000원
캐나다의 작가 앤 카슨(75)은 최근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해마다 거론된다. 텍스트가 시행으로 이루어진 소설 ‘빨강의 자서전’ 등이 대표작. 그런 그의 ‘처음’을 엿볼 수 있는 책이 국내 번역 출간됐다. 1986년 출간된 이 산문집은 그리스 고전문학 연구자였던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을 개작한 것. 그리스 로마의 서정시, 현대 작가의 시와 소설, 플라톤의 대화편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에로스’의 면면을 살핀다. 학위 논문이라기엔 유려하고, 산문이라기엔 심오하다.
에로스를 최초로 “달콤씁쓸하다”고 말한 이는 고대 그리스 서정시인 사포다. 사포는 에로스를 쾌락인 동시에 고통의 경험으로 여겼다. 에로스라는 욕망에는 역설이 깃들어 있다고 봤다. 고대 그리스 서정시인 아나크레온의 시엔 이런 구절도 있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나는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나는 미쳤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사랑과 증오가 에로스적 욕망에서 만나는 순간을 표현한 것이다.
앤 카슨은 그리스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에로스를 ‘없어진 것에 대한 욕망’이라고 정의한다.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에 대한 분석에서 통찰은 빛난다. 에로스에서 출발한 대화는 글쓰기에 관한 대화로 바뀐다. 에로스와 로고스(이성)로 양분된 ‘파이드로스’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앤 카슨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앎에 이르는 순간은 닮았다고 말한다. 이는 “나를 진정으로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또는 “전기가 통하는 것과도 같은 무언가”다.
앎과 에로스는 “손을 뻗는다는 기쁨”을 준다는 점에서 혹은 끝내 “다다르지 못하거나 모자란다는 고통”을 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