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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

온다 리쿠 장편소설 | 이지수 옮김 | 클레이하우스 | 464쪽 | 1만9800원

‘나는 녹아든다, 빛 속으로 녹아든다, 이 세계의 형태도, 의식도, 세상도, 모든 게 녹아들어 눈부신 하얀 빛 속에서 하나가 된다. 형태는 있었다. 그리고, 없었다. 같은 것이었다. 보이는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일부였다. 전부였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에 맞춰 춤을 추는 천재 안무가 겸 발레리노 요로즈 하루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아득해진다. 작중 한 인물이 하루에 대해 묘사했듯 ‘꽃이 만발하고 그윽한 향기가 가득’한 것 같은 착시에 빠진다. 미려한 문체 덕에 발레리노의 고운 몸선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하다.

일본 소설가 온다 리쿠(恩田陸·61)가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소설 ‘스프링’을 펴냈다. 그동안 판타지·호러·미스터리·SF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6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2016년 ‘꿀벌과 천둥’으로 일본 문학 사상 최초로 나오키상과 서점대상을 동시에 받으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그다. 지난달 국내 번역·출간을 계기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스프링’은 ‘초콜릿 코스모스’ ‘꿀벌과 천둥’을 잇는 ‘온다 리쿠표 예술가 소설’ 3부작을 완성한다. 발레 무대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담았다. 460여 쪽 두툼한 장편소설인데 물 흐르듯 읽힌다. 서정적이면서도 청량한 소년미(美)가 뿜어져 나온다. 작중 등장하는 발레 작품엔 작가의 상상력으로 완성된 오리지널 발레 작품도 상당하다. 이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노스탤지어의 마법사’로 불리는 온다 리쿠는 “‘노스탤지어’는 어린아이나 어른 누구나 가진 보편적 감정”이라며 “내가 소설을 쓰는 원동력 중 하나”라고 했다. /작가 제공

—데뷔 30주년 기념작을 펴낸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30년이네요! 아직도 소설가가 되었다는 실감이 나지 않고, 여전히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동경을 품습니다.”

—구상과 집필에 총 10년이란 시간을 들였다고요.

“모리스 베자르(현대 발레를 대표하는 프랑스 안무가)의 ‘춤은 눈에 보이는 음악’이라는 말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발레에는 엄격한 형태가 있고, 그 형태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무용수의 개성과 그 너머에 있는 자유의 재미를 깨달았어요. 이 세계를 묘사하기 위해 감상력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오랜 시간을 들였습니다.”

—전작에선 연극, 피아노 콩쿠르 등을 무대로 삼았습니다. 예술가를 소재로 꾸준히 소설을 쓰는 이유가 있나요?

“창작 혹은 재능이라는 것에 예전부터 매우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에게 끌리는 것 같아요. 니가타에서 컨템퍼러리 무용단 ‘Noism’을 이끄는 안무가 가나모리 조의 춤을 본 것이 소설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소설은 네 장으로 나뉜다. 주인공 요로즈 하루를 둘러싼 세 인물이 자신이 보고 느낀 하루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 장은 하루가 화자다. 천재 예술가의 안과 밖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그에게 빠져든다. 작가도 애정이 넘쳐흐른다. 온다 리쿠는 “이렇게까지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건 처음”이라고 했다.

—창조주마저 사랑에 빠진 요로즈 하루의 매력은 뭘까요?

“저는 원래 제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에 깊은 애착을 가지지 않습니다. 소설이 끝나면 미련 없이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요로즈 하루는 제 안에 자리 잡아 버려서, ‘스프링’의 연재가 끝나기도 전에 스핀오프(파생작) 단편을 쓰기 시작할 정도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강한 사람’에게 동경을 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제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유연한 강함’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가의 집필 루틴은 “매일 자기 전 한 권씩 책을 읽으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30여 년간 장르를 넘나들며 다작한 비결을 묻자 “작가는 독자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사랑해 왔습니다. 선행 작품에 오마주를 바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르를 가리지 않고 쓰게 되었어요.” 그가 소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뭘까. 온다 리쿠는 “자신이 그리는 세계를 믿는 것”이라고 했다. ‘스프링’이 그리는 세계는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그런 세계라면, 독자도 함께 믿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