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버리는 나라
이경은 지음 | 글항아리 |304쪽 | 1만8000원
2012년 6월 생후 15일 된 한국 아기가 미국 국경을 건너다 공항 입국 수속장에 붙들린다. ‘아기의 부모는 어디 있느냐’는 입국 심사 직원의 말에 한 미국 여성이 서류를 들이민다. 서툰 글씨로 쓴 친모의 입양 동의서다. 이 아기는 ‘보호자 미동반 외국인 아동’으로 분류돼 난민아동수용소에 보내질 위험에 처한다.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불법 이송 사건이었다. 당시 실무자들은 이 사건을 아기의 한국 이름 이니셜을 따 ‘SK 사건’으로 부른다. 1995년부터 20여 년간 공직에 몸을 담았고, 사건 당시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으로 근무한 저자가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한 편의 르포르타주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미혼모 시설에 거주하던 10대 친모, 입양을 종용한 시설장(長), 배후에서 활약한 브로커 목사, 엉터리 조언을 한 변호사…. 엉성한 한국 국제 입양 시스템을 이용해 아기를 국외로 보내려 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SK를 입양하려던 부부는 미 연방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벌인다. 저자는 자신을 ‘보건복지부 아웃사이더 공무원’이라고 칭하지만, 유관 부처의 소극적인 대응에 이 사건의 ‘키맨’이 된다. SK의 본국 송환을 요청하기 위해 미 연방법원 법정에 증인으로 선다.
SK는 끝내 본국으로 돌아오지만, 저자는 ‘계속 이 문제로 소환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진실의 문을 열었다는 느낌은 삶을 바꾸기도 한다’며. 2장은 ‘아기 슈퍼마켓’으로 불리는 주요 아동 송출국 중 하나인 한국의 현주소를 조망한다. 저자는 2018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을 역임하고, 2020년 국제 입양인 권리 옹호 단체 국경너머인권을 설립해 현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