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 미친 김 군
김동성 글·그림 | 보림 | 52쪽 | 3만원
길섶 노란 민들레를 들여다보던 소년이 고개를 든다. 담장 위 나팔꽃들이 스르르 피어난다. 소년은 그만 꽃들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저 ‘김 군’이라 불렸던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꽃을 사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꽃들과 눈 인사를 나누고 밤 사이 안부를 물었다. 틈만 나면 화분 앞에 앉아 넋을 잃고 꽃을 바라봤고, 밤늦도록 꽃에 관한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꽃 그림을 보고, 꽃 시를 읊고, 꽃 차를 마셨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와 고양이의 이름도 청화와 백화였다.
책장을 펼치면 우리 꽃 향기가 은은히 피어오르는 듯하다. 담백하면서도 세밀한 전통 화풍의 꽃 그림이 끝없이 펼쳐진다. ‘‘김 군’은 진달래에게서 봄의 설렘을 느끼고, 초롱꽃에서 싱그러운 여름을 보며, 국화의 섬세하고 은은한 향기로 가을을, 매화의 고고한 자태에서 겨울을 안다. 그가 넋을 잃고 꽃을 바라보듯, 독자는 책 속 꽃 그림에 넋을 빼앗기고 만다.
한 분야에 관한 깊은 사랑으로 지극한 경지에 이르는 일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 18세기 실존 인물 김덕형(1750~?)이 ‘김 군’의 모티브다. 실학자 박제가(1750~1815)는 실전(失傳)된 김덕형 책의 서문 백화보서(白花譜序)에 이렇게 썼다.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전문적 기예를 익히는 것은 오직 벽(癖·서화나 문예에 관한 집착)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하다. 김 군의 기예는 천고의 사람들과 견줄 수 있고, 김 군이 그린 꽃은 역사에 길이 남을 공적이며, 향기의 나라에서 배향하는 위인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꽃에 빠진 그를 사람들은 욕하고 조롱했다. 요즘 식으론 ‘사회 부적응자’. 하지만 그는 꽃에 관해 아무도 넘보지 못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누구도 따르지 못할 방식으로 꽃을 그리는 화가가 된다. 어쩌면 김덕형이 다다른 경지는 그 스스로 꽃이 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김덕형은 강세황(1713~1791), 심사정(1707~1769), 김홍도(1745~1806?) 등 18세기 조선 예술계를 대표하는 사대부와 여항(閭巷·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가진 중인)들의 야외 모임을 그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 ‘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에 등장한다. ‘균와’는 지금의 경기도 안산 인근 지명이며, ‘아집도’는 야외 모임을 기념 촬영하듯 남긴 그림을 이르는 말. 갓을 쓴 문사들 사이, 흰 수염을 길게 기른 강세황 옆에 앉은 땋은머리 13세 소년으로 그려진 이가 김덕형이니, 당시 이 소년의 꽃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널리 소문 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홍익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들은 물론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아처’ 등 다양한 책에 그림을 그렸다. ‘엄마 마중’(2013)으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