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개 고양이 대학살

힐다 킨 지음ㅣ오윤성 옮김ㅣ책공장더불어ㅣ332쪽ㅣ2만원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 대전이 발발한 지 이틀 뒤인 9월 3일,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벌어진 전쟁사(史)의 한 장면에 이 책은 확대경을 들이댄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대중역사과 학장을 지낸 저자는 “영국의 선전포고 이후 단 나흘 만에 개·고양이 무려 40만마리가 ‘적’이 아닌 보호자에게 ‘학살’당했다”고 밝힌다. 1차 대전과 대공황 등을 겪은 뒤 식량·방공호 부족 등에 대한 ‘심리적 공포’가 집단주의적 광증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당시 각종 언론과 수의사 기록 등 문헌을 수집·검토하면서 인간과 동물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정신적 회복력을 키워갔다고 전한다. 동물의 뛰어난 청각·후각 능력은 길잡이 역할을 했고, 새 한 마리의 지저귐이 ‘희망’의 상징이 됐다. 윈스턴 처칠 총리의 부인은 사람들이 각자의 마구간 앞에 현수막을 걸어 동물과 인간이 함께 피신하는 방공호로 삼게 했다. 애정 어린 동물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들의 눈을 바라보는 동안 인간에겐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이 분비됐다. 저자는 “최근 문화사 학자들 사이에서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느낀 바를 기술하는 ‘감정 역사’ 연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면서 “인간의 관점만이 아닌 다각도에서 역사를 다시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