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바다에서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장편소설 | 강동혁 옮김 | 376쪽 | 열린책들 | 1만6800원
시간 여행을 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100%라고 장담하진 않겠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당신은 움직이겠는가? ‘고요의 바다에서’ 주인공 개스퍼리는 반려묘가 1985년에서 넘어온 시간 여행자라는 사실을 방금 알게 됐다. 그는 2401년, 달 식민지 주민인데 말이다.
개스퍼리는 과거로 이동해 특이 현상에 연루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을 인터뷰한다. 그 특이 현상이란, 전혀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찰나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순간이 섞이는 것, 소설에서는 그것을 파일 오염이라고 부른다. 그 결과, 몇 사람의 삶에 같은 페이지가 끼어들게 됐다. 파본처럼.
다양한 시공간의 인물이 모두 주인공처럼 등장하는데 그 범위가 무려 500년이고, 지구인이 우주에 식민지를 둔다는 설정이 있어 공간폭도 넓다. 읽기에 다소 어지러울 수도 있지만, 퍼즐을 맞추는 희열도 상당하다. 시간 여행자 개스퍼리를 따라가자.
소설 속 시간연구소에 따르면 시간 여행자의 덕목은 ‘거리 두기’다. 어떤 상황에도 개입하지 말 것. 문제는 개스퍼리를 움직이는 마음, 즉 ‘인류애’가 시간 여행자에게 금기라는 것이다. 그는 다른 이의 비극을 외면하지 못하고, 덕분에 독자는 연결의 감각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결국 그것이 우리를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한다는 것을. 설령 이 삶이 시뮬레이션이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해도 말이다.
소설은 우리의 삶이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보일 반응에 대해서도 말해주는데 꽤 통쾌하다. ‘그래서 어쩌라고’(347쪽)의 힘이다. ‘시뮬레이션 안에 산대도 삶은 삶’(347쪽)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