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웨스 앤더슨: 어드벤처
월리 & 어맨다 코발 지음 |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368쪽 | 3만1000원
웨스 앤더슨(55) 감독은 영화 비주얼의 마법사. ‘로열 테넌바움’(2001), ‘문라이즈 킹덤’(2012),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같은 제목을 듣고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른다면,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빠져들 수밖에 없다. 토끼굴 속으로 떨어져내리는 앨리스처럼.
알록달록 부드러운 파스텔톤 색감의 선명한 대비, 기하학적 대칭의 건물과 사물로 이뤄진 풍경을 보면 그의 영화 팬들은 말한다. “이거, 웨스 앤더슨 같은데?” 부부 여행가인 저자들도 여행지 버킷리스트를 짜다 만난 사진 몇 장을 보고 똑같은 생각을 했다.
2017년 소셜미디어 채널을 열고 세계 곳곳의 앤더슨 영화를 닮은 풍경을 아카이빙 했다. 전 세계에서 사진을 보내왔다. 평범해 보이던 일상의 공간이 앤더슨 감독의 시선을 통과해 비범한 비일상의 세계로 바뀌듯, 다른 세상을 발견하는 비결은 다른 시선. 3년 만에 두 번째 나온 ‘앤더슨적 세계’의 모음집인 이 책은 약 160명이 ‘앤더슨적 시선’으로 포착한 사진 220장을 담았다.
직접 발품을 팔아 찍은 사진에 담긴 이야기들도 귀하다.
1933년 문을 연 미국 매사추세츠의 예술영화관 쿨리지 코너 극장(50쪽)은 1980년대 철거와 재개발 위기를 맞았지만, 주민 400명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건물을 껴안으며 살려냈다. 한때 철강산업의 실리콘밸리였던 펜실베이니아 스쿨킬강 계곡을 달리는 콜브룩데일 철도(52쪽)의 무성한 양치식물 화분으로 장식된 식당 칸에는 미국이 누렸던 강건한 번영의 시절이 여전히 살아 숨쉰다.
1936년 갓 태어난 아기 호르헤가 세례를 받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마리아 아욱실리아도라 이 산 카를로스 대성당(80쪽)은 유럽적 장엄함과 남미의 경쾌함이 결혼한 듯 아름다운 곳. 아기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는 훗날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었다. 공산 치하 동독의1980년대, 7년간 이어진 월요 평화 기도회가 1989년 마침내 거대한 민주주의 요구 시위의 횃불로 타오른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스 교회(135쪽) 내부는 뜨거운 역사의 기억과 달리 차분하고 고요하다.
‘경이로운 장소’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핀란드 헬싱키의 ‘이한툴라’(154쪽)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꼭 닮은 노동자 공동주택. 딸의 소원을 들어주려 바위가 된 아버지의 전설이 담긴 이탈리아 알프스의 바위산을 배경으로 우뚝선 호흡기 질환 어린이 치료시설 ‘피오 12세 연구소’(198쪽)의 샛노란 건물이나 ‘포르투갈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항구도시 아베이루의 푸른 타일로 장식된 주택 ‘R. DR. 바르보자 드 마가야네스’(205쪽·사진), 투숙객들의 뜨거운 연애편지가 벽지 뒤에 숨겨진 채 발견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코모 호숫가의 그랜드 호텔 트레메초(210쪽)는 앤더슨의 영화에서 따온 스틸 사진같다.
앤더슨 감독은 특별 서문에 이렇게 썼다. “어떤 곳들은 상상 속 풍경처럼 보이고, 몇몇은 아무리 봐도 내가 창조한 영화 속 공간들 같다. 내가 가본 곳은 런던의 우산가게(167쪽)가 유일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언젠가 나는 덴마크의 연 축제(179쪽)에 꼭 갈 것이다!”
부작용 주의. 사진 속 장소로 날아가기 위해 당장 비행기 표를 끊고 싶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