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겨울은
김선남 글·그림 | 창비 | 52쪽 | 1민5800원
잠시 멈춰 가만히 들여다봐야 한다. 숲속의 겨울은 스산한 계절. 하지만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엔 꽁꽁 싸맨 겨울눈이 자리 잡고 있다. 부드러운 흙과 맞닿은 낙엽 아래엔 곤충의 알과 고치가. 아름드리 나무의 땅 밑 뿌리 곁엔 도마뱀과 고슴도치가 몸을 돌돌 말고 웅크려 있을 것이다. 추위에 더욱 쨍한 햇빛이 반짝이는 한낮이면, 가슴팍이 귤빛인 되새나 동글동글 붉은 털뭉치 같은 뱁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부르는 노래를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겨울의 깊은 침묵 속에 숨죽인 숲속 생명의 약동이 보이고 들리는 책. 작가는 20여 년간 나무를 공부하며 자연과 생명을 성찰해왔다.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의 그림에 순환하는 계절 속 자연을 근접 촬영하듯 담았다.
갑자기 온 줄 알았는데, 사실 겨울은 여름의 끝자락에 일찌감치 시작된다. 제비가 높이 솟아오르는 건 남쪽 나라로 먼 길을 떠날 아기 제비들이 바람을 타고 미끄러지듯 나는 법을 배우기 때문. 기러기가 잠시 목을 축이고 다시 길을 재촉할 즈음엔 어치가 숲속 여기저기에 도토리를 숨긴다. 고라니와 청솔모까지 털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면 겨울은 성큼 다가온 것이다.
곧 꽁꽁 얼어붙는 추위가 닥쳐온다. 거센 눈보라도 몰아친다. 하지만 그동안 나무는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숲속 작은 존재들은 서로 어깨를 곁대고 고요히 쉬며 힘을 모은다. 긴 겨울을 온전히 견뎌낸 뒤 나무의 몸속엔 세월만큼 깊고 진한 나이테가 한 줄 더 새겨진다. 쉬이 끊기지 않는 숲속 존재들의 생명력을 지켜본 이들의 마음 속에도, 생의 고난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결국 더 힘찬 봄을 맞을 거라는 희망이 싹 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