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떤 막장 드라마도 셰익스피어를 능가하지 못한다. 이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다. 보통은 허구의 창작물에 대해 하는 말인데, 현실에도 자주 들어맞는다. 글래미스의 영주인 맥베스 장군은 지방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한 후 귀향하던 길, 음산한 들판에서 세 마녀와 마주친다.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각자 한마디씩 하고 사라진다. “글래미스의 영주시다.” “코도의 영주시다.” “왕이 되실 분이다.”
불경한 예언을 들은 맥베스는 펄쩍 뛴다. 그때 사신이 달려와 알린다. “왕께서 장군을 코도의 영주로 임명하셨습니다.” 하나의 예언이 실현되었다! 잠잠하던 그의 마음에 파문이 일어난다. 내가? 어떻게? 이때만 해도 맥베스에게 모반의 뜻은 명확하지 않았다. 제임스 1세 이전까지 스코틀랜드의 왕위는 장자 상속제가 아니라, 왕가의 4대 이내 친족인 성인 남성 누구나 후계자로 지명될 수 있었고, 왕위 계승은 영주들의 찬반 투표를 거쳐 승인되었으므로, 왕과 사촌지간인 맥베스에게도 일말의 기회는 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 맥베스의 성을 찾은 왕이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지명한다. 고로, 충신이었던 맥베스가 덩컨 왕을 시해한 것은 예언 때문이 아니다. 그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었으나 자각하지 못했던 야심이 깨어난 것일 뿐. 맥베스의 아내는 남편에게 돌연 제시된 ‘왕위’의 가능성을 보자마자,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쿠데타를 진두지휘하는 작전사령관처럼 기민해진다. 갈팡질팡하는 남편의 의지박약을 꾸짖고, 사기를 북돋워 거사의 감행을 재촉한다. 파국은 이들 부부가 어떤 이유 없는 믿음, 어긋난 예언의 효력을 되살리려는 집념에 사로잡힌 데서 비롯되었다.
맥베스 부부를 광기로 몰아가 전쟁까지 불사하게 만든 망상, 환청과 환영은 그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는 수많은 착오들의 문학적 알레고리일 뿐일까? 셰익스피어 극은 인물들이 결국 내면의 인간성을 되찾음으로써 저열한 막장 드라마에서 장엄한 비극으로 승화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인간은 셰익스피어의 인물들과 달리 숭고함이 부족하고, 자기 정당화에는 지나치게 약삭빠르다. 어리석은 판단에 이르는 잘못된 신념을 바꾸지 못해서, 언젠가는 자신의 과오가 잊히리라 믿는다. 현실의 막장 드라마가 예나 지금이나 이토록 끔찍하게 진부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