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이면 독일 인문학자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세상을 떠난 지 꼭 20년이 된다. 한국 언론에 부고 기사가 실릴 정도의 세계적 작가였는데, 최근 10년 새 그의 이름이나 대표작 ‘교양’(들녘)을 언급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요즘은 교양이라는 일반명사 자체가 서먹하게 들린다. 다들 젊고 발랄하게 보이는데 골몰하느라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국어사전에 나온 교양의 뜻풀이)는 제쳐둔 것 아닌지.
2024년에 슈바니츠의 ‘교양’을 추천하는데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표지에 적힌 부제,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는 문구다. 이 책을 읽는다고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다 알게 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독일에서 책이 출간된 1999년에도 그랬다. 번역서 기준 768쪽인 이 책에서 543쪽까지인 1부에는 ‘20세기 유럽 지식인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정도의 부제가 적당하다. 물론 이 1부도 읽으면 유익하다. 유럽의 역사와 예술, 철학을 통찰력 있게, 재치까지 곁들여 설명한다.
하지만 핵심은 544쪽부터다. ‘능력’이라는 제목의 2부에 부제를 붙인다면 ‘교양인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정도가 좋겠다. 슈바니츠의 재치는 여기서 신랄함의 경지에 이른다. 교양이란 뭘까? 슈바니츠는 교육받았다는 인상을 풍기기 위해 벌이는 사회적 게임이며 일종의 유희라고 대답한다. 교양은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몰라도 되지만 반 고흐에 대해서는 모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교 클럽이다. 그 클럽의 회원들 사이에는 복잡하고 부조리한 금기와 규칙이 있고, 그들은 그 규칙에 따라 축구 선수가 공을 차듯 대화를 주고받는다.
즉 교양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의사소통 양식이다. 여기에 참여하려면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리하고, 현대의 여러 사회적 구조물을 이해하며, 언어를 잘 다룰 줄 알아야 한다. 한쪽에서는 교양을 꼰대들의 낡은 취향으로, 반대편에서는 자신을 치장하는 문화 자본쯤으로 인식하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이 두툼한 책을 추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