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톰 홀랜드 지음|이종인 옮김|책과함께|680쪽|4만3000원

‘위생시설과 치료약, 뛰어난 교육, 잘 닦인 도로와 상수도, 와인….’ 기원전 1세기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등장부터 약 200년간을 일컫는 ‘팍스 로마나’의 대표 유산들이다. 이름부터 ‘로마의 평화’를 품은 로마 최대 번영기로도 알려졌다. 광대한 영토를 정복해 산하에 거느릴 수 있었던 막대한 군사력이 그 뒷받침이었다.

저자는 이 평화의 원동력이었던 군사력이 역설적이게도 로마 내부로 향하자 위기의 원동력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서기 69년 네로 황제의 자결 후 황제 찬탈전에 속주의 장군들이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한 해에만 네 명의 황제가 즉위와 폐위를 거듭한 역사가 대표적 예다. 로마 황제들이 유독 군대의 통제, 끊임없는 원정을 우선 과제로 여기고, 유혈이 흐르는 콜로세움 검투로 시민들의 눈을 돌린 이유였다. 해방 노예 카이니스를 아내처럼 사랑했던 베스파시아누스 등 저자가 중간중간 풀어놓은 로마 황제들의 흥미로운 개인사를 등불 삼으면 평화의 그림자에 묻혔던 팍스 로마나의 이면을 상세히 더듬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