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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질은 부드러워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 장편소설 | 남명성 옮김 | 해냄 | 308쪽 | 1만7500원

지구 상 모든 동물이 ‘GGB’라는 의문의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이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고로 인간은 동물을 먹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전 인류가 채식하거나 대체육을 개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류 문명은 온순한 초식동물의 집합체가 아니지 않던가. 육식 문화권에서 자라난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는 육식을 향한 인류의 욕망을 극단으로 밀어붙여 디스토피아를 구축한다. 인간은 인간을 먹기로 결심한다. 정부는 ‘생존을 위한 결정’이라며 제한적 인육 소비를 허가하고, 대기업은 인육 가공업에 뛰어든다. 인간에게 먹일 인간은 가축처럼 사육하고 더는 인간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상품이다. 사람들은 ‘인육’이라는 말 대신 ‘특별육’이라는 말을 쓴다. 특별 안심, 특별 저민 고기, 특별 콩팥….

특별육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주인공 마르코스 테호는 이 모든 상황이 마뜩잖다. 하지만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위한 비용을 대기 위해 어쩔 수 없다. 어느 날 그는 공장 매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고기용 암컷’ 한 마리를 선물받는다. 그는 처치 곤란인 고기용 인간을 헛간에 두고 보살피다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만다. 그러고 ‘재스민’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1부가 디스토피아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예열 단계’라면, 2부는 제목처럼 ‘타락과 광기’ 그 자체다. 도저히 무언가 먹으면서 읽을 수 없는 책이다. 고기 비슷한 것이라면 더더욱.

2017년 아르헨티나에서 출간한 이후 전 세계 27국에 판권이 팔렸다. 작가는 정육점을 바라보다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저것들이 인간의 시체였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