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아람 Books 팀장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 높은 기둥 위에 행복한 왕자 조각상이 서 있었다. 행복한 왕자는 온몸이 최고급 금박으로 둘러싸이고, 눈에는 반짝이는 사파이어 두 개가, 손에 쥔 칼자루에는 커다란 붉은 루비가 빛나고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 단편 ‘행복한 왕자’(1888)를 다시 읽은 건 지난주 최고 시청률 20.2%를 찍은 드라마 ‘눈물의 여왕’ 때문입니다. 삐걱대는 3년 차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에서 부부의 신혼여행지는 독일 포츠담의 상수시 궁전. ‘상수시(Sans-Souci)’는 불어로 ‘걱정 없는’이란 뜻이죠. 남편 현우(배우 김수현)가 “행복한 왕자가 살았던 집이 이 궁전이었대” 하자 차갑고 도도한 재벌 3세인 아내 해인(배우 김지원)은 답하지요. “내가 어렸을 때 ‘행복한 왕자’ 보고 느낀 건 딱 하나였어. 하여튼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왕자 입장에서도 이런 데 살 때가 좋았겠지. 괜히 밖에 나갔다가 볼 꼴 못 볼 꼴 다 보고, 보석이고 눈알이고 남 다 퍼주고.” 당황하며 현우는 말합니다. “해인아, 그래서 행복한 왕잔데.”

왕자의 ‘행복’엔 이중적 의미가 있죠. 살아 부귀영화를 누리던 시절의 행복과 동상이 되어 가난한 이들에게 금박과 보석을 몽땅 나눠주며 느낀 행복. 왕자는 심부름꾼이 되어 준 제비에게 말합니다. “너는 신기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구나.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것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란다. 비참함만큼 놀라운 것은 없어(There is no Mystery so great as Misery).”

흉물이 된 동상은 철거되고 제비는 얼어죽지만, 신에게 “도시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가지를 가져오라” 명 받은 천사는 납으로 된 왕자의 심장과 제비의 시체를 택하지요. 이 결말이 ‘눈물의 여왕’ 전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