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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 블루 아이

루이스 베이어드 소설 | 오렌지디 | 664쪽 | 2만8000원

은퇴한 형사 거스 랜도가 미국 육군사관학교 교장 세이어의 은밀한 초대를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생도 하나가 목을 맨 채 발견되었는데, 그것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데다가 시신마저 훼손되었다. 심장이 사라진 것이다. 교장은 이 소문이 외부로 유출되기 전에 랜도가 비밀리에 수사해주기를 부탁한다.

랜도의 요구 사항 중 하나는 1학년 생도 포를 첩보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 말에 돌아오는 반응들. ‘(포는) 논리는 거의 없습니다’ ‘젊은 나이에 셰리를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더군요’ ‘어디 그것만 마셨을까’ 이쯤 되면 소설 속에 난입해 ‘에드거 앨런 포는 2024년에도 핫한 작가라고요!’ 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다.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에드거 앨런 포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데, 1830년 그 사관학교에서 포의 시는 인기가 없다. 그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지어낸 즉석 시에만 반응이 좀 있을 뿐. 실제로 에드거 앨런 포가 그 사관학교의 생도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물론 랜도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포와의 케미가 어찌나 좋은지, 이제 나는 에드거 앨런 포를 떠올릴 때마다 첩보원 이미지를 떨치기가 어렵게 됐다.

모두 660여 쪽. 이 정도면 책이 아니라 건물 아닌가 싶은 분량인 데다가 문장의 밀도도 상당해서 하룻밤에 후루룩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래서 이 우아하고 묵직한 추리소설이 더 반갑다. 과학 수사물의 현란한 정보 앞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나 같은) 독자라면 1830년 배경의 이 고전적인 수사 방식이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함부로 단서를 발설하는 일은 참아야겠지만 그럼에도 한 줄 덧붙이자면, 한 페이지도 건너뛰지 말라는 것이다. 반전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