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단어
르네 피스터 지음|배명자 옮김|문예출판사|232쪽|1만7000원
“뉴욕타임스를 이끄는 것은 편집장이나 발행인이 아니라 트위터다.”
존스홉킨스 대학 정치학 교수 야샤 뭉크가 저자에게 한 이 말에 책의 주제가 응축돼 있다. 저자는 독일의 진보 언론 슈피겔 기자. 2019년부터 워싱턴 지국장을 맡고 있다. 책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미국 현실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언제나 좌파를 위한 무기이자 약자들이 특권층의 탄압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이었는데 ‘깨어있다’고 자부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정의와 진리를 독점하고 의견의 통로를 좁히려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뉴욕타임스가 백악관 출입기자를 지낸 여론면 에디터 제임스 베넷을 해고한 일이다. 베넷은 조지 플로이드 살해 이후 미국 일부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군대를 보내 폭력을 진압하라”고 요구한 공화당 의원 톰 코튼의 칼럼을 실었다. 다양한 관점의 목소리를 보도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이지만 뉴욕타임스의 한 직원이 “이 칼럼의 게재는 뉴욕타임스의 흑인 직원을 위험하게 한다”고 트위터에 올린 글이 ‘좋아요’를 2만5000개 넘게 받으면서 상황은 베넷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애틀랜틱’ 편집장 시절 흑인 작가 타네히시 코츠가 미국 노예의 후손에게 배상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을 커버 스토리로 보도한 베넷의 ‘진보적’ 경력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뉴욕타임스 현 편집국장 조셉 칸이 취임 인터뷰에서 “동료들이 인터넷의 분노가 두려워 까다로운 주제를 다루지 않을 때가 많다”고 말한 것은 공론의 장으로서 탄생한 소셜미디어가 오히려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저자의 고국인 독일 언론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2020년 12월 할리우드 여배우 엘렌 페이지가 성전환 사실과 함께 앞으로 이름이 엘리엇 페이지로 바뀐다고 알렸을 때, 독일의 여러 매체는 이렇게 보도했다. “엘렌 페이지가 엘리엇 페이지로 바뀌었다!” 팩트를 보도했을 뿐이지만 ‘죽은 이름’을 다시 한번 공개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트랜스젠더 활동가들이 분노했다. 이후 슈피겔을 포함한 여러 매체가 기사를 수정하고 각주를 달아 해명했다. “수정 전 기사는 트랜스젠더 정체성 주제를 다루는 데 전반적으로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미국 대학에선 열린 토론이 사라진 지 오래다.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감수성이 부족하거나 후진적이거나 소수자에게 상처를 준다고 여겨지는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교수가 정직당하거나 초청 연사가 거부당한다. 최근엔 ‘혐오 발언’ 또는 ‘상처를 주는 말’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 “허용 한계선이 너무 빠르게 바뀌어서 선의를 가진 사람들조차 따라잡을 수 없다.”
일리노이대학 시카고 캠퍼스 법학 교수 제이슨 킬본은 2020년 12월 직장 내 차별을 다루는 과제를 학생들에게 주면서 한 여성이 직장 동료에게 언어적 모욕을 당한 사례를 제시했다. 킬본은 욕설을 그대로 쓰지 않고 “n…”(nigger)과 “b…”(bitch)로 축약한 후 각주를 달아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여성을 지칭하는 비속어”라고 적었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적 욕설을 인용할 때 이렇게 축약하는 건 그때까지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식이었지만 법학과 흑인대학생회는 축약된 “n…”을 보기만 하는 것도 ‘정신적 테러’라 항의하며 성명서를 트위터에 올렸고, 대학은 얼마 지나지 않아 킬본의 정직을 결정했다.
2022년 3월 뉴욕타임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84%의 미국인이 “일부 국민이 결과가 두려워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문제로 여긴다”고 답했다. “신랄한 비판과 비난이 두려워 입을 닫은 지 오래”라고 응답한 사람은 55%였다. 우리는 다를까? 최근 한 연예인이 ‘건국전쟁’ 포스터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악플 세례를 받은 일은 “나만 옳다”는 이른바 ‘깨시민’들이 타인의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대표적인 사례다. 저자는 말한다. “우파 포퓰리즘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려는 독단적 좌파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 혐오와 독단은 자유로운 토론의 적이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시야만 존중하는 관용은 쓸모없고 황량하다.” 원제 Ein falsches W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