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는 40대 중반에 ‘군주론’을 집필했다. 공직으로 복직하고픈 마음이 간절하던 때였고, 그래서 자기 추천서 성격이 강한 군주론은 이중으로 음흉한 책이 되었다. 군주는 음흉해져야 한다는 말을 음흉한 목적으로 썼으니. 삼켜내기 어려운 주장들을 담은 군주론은 이런 배경 덕분에 더 해석이 분분해지는 책이 됐다.
군주론을 쓰고 10여 년이 훌쩍 지나 마키아벨리는 말년의 역작 ‘피렌체사’를 썼다. 군주론 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다. 다른 역사가들이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피렌체의 내부 분열 문제는 대충 쓰거나 무시했다는 비판으로 책을 시작한다. ‘나 (이번에는) 눈치 안 보고 썼다. 그리고 내부 분열 문제에 집중했다’는 선언인 셈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는 ‘마키아벨리의 피렌체사’(무블)라는 제목으로 2022년에야 완역됐다. 번역본 기준 780쪽의 대작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군주론보다 읽기 수월하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다급한 구직자가 아니라 냉철한 논평가다. 그가 고국에서 일어난 사건의 원인과 영향을 분석할 때, 행간의 숨은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덜 기울여도 된다. ‘귀족과 평민 간의 심각하지만 자연스러운 적의가 공화국에 창궐하는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진단도, 왜 똑같이 평민이 승리했는데 로마는 더 고결해졌고 피렌체는 반대로 비루해졌는가 하는 분석도 소화하기 전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어본다는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대목에서 한국의 계층 갈등 양상은 로마를 닮아 가는지, 피렌체를 향해 가는지 생각하게 된다.
인간 마키아벨리도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온다. 책이 중점적으로 다룬 13~15세기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분열상은 징글징글할 정도다. ‘훌륭한 법과 제도로 다스려지는 도시는 다른 도시들과 달리 더 이상 어느 한 사람의 미덕에 의지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도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전체적인 정부와 방종한 정부는 모두 틀림없이 단 한 사람의 미덕과 행운에 의지해 유지될 수밖에’라는 결론을 내리는 좌절한 지식인의 초상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