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팅

줄리아 켈러 지음|박지선 옮김|다산북스|348쪽|18000원

이 책의 주제는 명료하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때려치우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버티는 것은 결코 미덕이 아니라고 말한다. “퀴팅은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할 자원이다. 패배가 아니라 결정이고 전환점이다.” 책의 제목인 ‘퀴팅(quitting)’은 ‘그만둔다’ ‘때려치운다’는 뜻이다.

저자부터 퀴팅의 고수다. 그의 삶은 ‘그만두기’와 ‘재시작’으로 점철돼 있다. 퓰리처상(2005) 수상 시카고 트리뷴 기자라는 화려한 이력 전에 몇 번의 ‘퀴팅’이 있었다. 영문학 박사과정을 밟다 더 이상 못 하겠다 싶어 그만뒀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후 인생이 달라졌다. 자그마한 지역 신문사에 취직했는데 업무 성과 평가에서 A+를 받았지만 급여가 전임 남자 직원의 4분의 1밖에 안 됐다. “넌 20대 미혼 여성이고 그는 가족을 부양하는 남자잖아”라는 편집국장의 해명을 듣고 또 그만뒀다. 밤마다 눈물 흘리며 ‘앞으로 뭐하지?’ 불안에 떨었지만 새 인생이 펼쳐졌다. 메이저 언론으로 옮겼고, 상도 받았다. 기자로서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또 그만뒀다. 2012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모두 8권의 시리즈를 냈으며 첫 작품은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이 책은 그간의 ‘퀴팅’ 경험에 취재와 연구를 곁들인 논픽션이다.

투지와 끈기를 뜻하는 ‘그릿(grit)’은 오랫동안 서구 사회의 미덕이었다. 저자는 영국 작가 새뮤얼 스마일스가 1859년 ‘자조론(Self-Help)’을 출간한 이래 ‘그릿’이 서구 사회에 스며들었다고 분석한다. “사람들은 ‘자조론’ 이후로 운명의 원천은 단 하나이며 단순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개인이 노력하느냐 하지 않느냐다.”

퇴사 후 환호하는 여성을 동료들이 축하해 주고 있다. 저자는 “퀴팅은 분명 효과가 있다. 방향을 바꾸었을 때, 기존의 행동을 버리고 새로운 행동을 받아들였을 때 삶이 급격하게 나아진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렇지만 포기를 모르고 버티는 건 진화론에 위배된다. 동물은 어떤 일이 효과가 없으면 그 일을 하지 않고 멈춘다. 쓸데없는 것을 쫓는 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면 힘이 빠져서 포식자에게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꿀벌이다. 곤충학자 저스틴 슈밋에 따르면 꿀벌은 위협이 될 수 있는 생명체가 집단에 접근할 때 침을 쏘지 않을 수도 있다. 목숨을 걸고 돌진하기보다 다음 단계를 밟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그만두고 나서 괜히 마음 졸이며 고민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저자는 “적자생존에는 퀴팅의 기술이 숨겨져 있다”면서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를 꿀벌에 비견한다. 그는 미국 여자 기계체조 역사상 단일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목에 건 선수였지만,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나의 몸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며 네 종목을 기권했다.

문학작품에서도 ‘퀴팅’은 주요 주제다. 영국 심리치료사 애덤 필립스는 2022년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포기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게재했다. 이 글에 따르면 퀴팅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특히 ‘맥베스’와 ‘리어왕’에 원동력을 제공했다. 필립스는 비극적 영웅들을 “포기할 줄 몰라 파멸에 이른 본보기”라 정의한다. 복수와 야망, 질투처럼 제거하기 힘든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서 흰 고래를 맹렬히 쫓은 에이허브 선장에게 퀴팅은 잘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이자 이룰 수 없는 목표다. 기나긴 여정을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 그에게 고통의 원인이다. 선장은 신음하며 일등항해사 스타벅에게 말한다. “숨어서 날 속이는 주인, 잔인하고 무자비한 황제가 자연스러운 사랑과 열망을 등지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줄곧 자신을 떠밀고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지….”

팬데믹 이후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가 유행하고 있다. 저자는 이보다는 ‘유사 그만두기(quasi-quitting)’가 우월 전략이라 말한다. 타이거 우즈가 교통사고 이후인 2022년 4월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완벽주의’를 내려놓아 47위를 하고도 만족한 것처럼, 모든 걸 놓아버리기보다 책임은 다하면서 단 몇 가지만 내려놓으면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23년 아마존 ‘최고의 논픽션’ 선정작. 엄격히 분류하자면 이 책 역시 자기계발서지만 탄탄한 취재와 구성 덕에 허망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저자는 “퀴팅은 나에 대한 사랑이며, 긍정의 태도”라면서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의 이 말을 인용한다. “의도와 의지력은 매우 과대평가되었다. 그런 것들로 이룰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