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부(富)로써 인류에 가장 크게 기여한 작가라면, 단연 볼테르를 꼽겠다. 1694년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볼테르는 스물두 살 때, 나이 어린 국왕을 대신해 섭정하던 오를레앙 공을 풍자한 시를 써 파리에서 추방되었다. 그러자 타고난 반골인 그는 또다시 오를레앙 공에 대한 풍자시를 썼고, 결국 바스티유에서 11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볼테르는 어느 무례한 기사(騎士)와 시비가 붙게 되었는데, 일개 부르주아가 귀족에게 결투를 신청했다는 이유로 바스티유에 투옥되었다가, 영국으로 추방되었다.

이때부터 볼테르는 평생 2000편이 넘는 팸플릿, 풍자시, 풍자소설을 발간해, 절대군주와 계급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종교와 학문의 최고 권위자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문필가로서의 뛰어난 재능 덕분에 왕실 사료편찬관에 임명되기도 했지만, 촌철살인의 풍자 본능을 억누르지 못해 결국 쫓겨났다. 그 결과, 그의 책들은 금서가 되어 불태워졌고, 그 자신은 인생의 대부분 기간 동안 추방 망명 수배 상태였다.

불굴의 볼테르는 죽을 때까지 사상의 자유와 공화제 요구를 굽히지 않았고, 이로써 프랑스혁명의 정신적 토대를 마련했다. 그럴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재력이 한몫했다. 프랑스 최초의 복권 당첨자였던 볼테르는 영리하게 자금을 운용해 중년에는 유럽 최고의 부호 중 한 명이 되었다.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 지역 곳곳의 땅을 사들여 여러 채의 집을 소유했던 그는 프랑스에서 체포하러 오면 스위스 집으로 뛰어가고, 스위스에서 잡으러 오면 프랑스 집으로 건너가 태연히 집필을 이어갔다. 볼테르식 풍자의 매운맛이 살아 있는 잡문집 ‘불온한 철학사전’도 이때 쓰였다.

알파벳순의 어휘집 형식이지만, ‘돌팔이’ ‘민주 정치’ ‘시기심’ ‘편견’ 같은 단어 목록만으로도 ‘철학사전’의 싸늘한 유머 코드가 짐작될 텐데, 가령 ‘운명’ 항목에서 볼테르는 이런 말을 한다. “편견과 열정에 사로잡히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 만큼, “나에게는 이 글을 쓰려는 열정”이 있고, “당신에게는 내 글을 비난하려는 열정”이 있다. 그러나 “운명의 노리개”인 나는 숲속의 나이팅게일처럼 “노래하도록 태어났다. 그렇게 해서 당신을 조롱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