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의 세계
제임스 빈센트 지음 장혜인 옮김|까치|440쪽|2만2000원
우리는 매일 ‘측정의 세계’에서 눈을 뜬다. 먹고 입는 모든 것에 늘상 ‘저울’과 ‘자’를 대며 해결법을 찾는다. 당장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한 그릇을 떠올려 보자. 라면 한 봉지당 최적 물의 양을 잴 수 없었다면, 우리는 소태같이 짜거나 한강처럼 넘치는 국물 사이 방황하는 일기를 써댔을 것이다.
저자는 측정 기준들이 시대정신까지 좌지우지해왔다고 말한다. 온도계와 통계학의 발전은 위협적이기만 했던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대비하게 해줬지만, 우월한 유전자를 골라낸다는 오만한 우생학도 탄생시켰다. 미터법과 영국식 도량형, 미국식 도량형의 차이 이면에는 독립적인 문화를 둘러싼 이념 전쟁이 있었다. 그중 세계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미터법’조차 본디 ‘왕의 발’로 길이를 재던 풍습을 혐오한 프랑스혁명의 산물이었다. 이 다채로운 측정의 역사 앞에선 데카르트의 명제를 다음처럼 바꾸고 싶어진다. “나는 측정한다, 고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