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그림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답했습니다. “저는 항상 저 자신에게 의지해 그렸습니다. 제게 큰 영향을 준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폐막한 서울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 회고전에 넉 달간 33만명이 들었다는 기사를 보고 미국 하퍼앤드로 출판사에서 1962년 나온 큐레이터 캐서린 쿠(1904~1994)의 인터뷰집 ‘The Artist’s Voice’를 펼쳤습니다. 책에서 쿠가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리나요,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리나요?”라고 묻자, 호퍼는 답합니다. “오직 저 자신을 위해 그립니다. 제 작품이 남들과 소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그림 그릴 때 절대로 대중을 생각하지 않아요. 절대로요.”
남을 위한 작품은 예술이 아닌가? 생각하다 보니 10년 전 뉴욕 작업실에서 대지미술가 크리스토(1935~2020)를 인터뷰했을 때 들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자유를 찾아 공산화된 고국 불가리아를 탈출했던 그에게 “당신에게 예술이란?” 물으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우리 자신을 위한 것.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면 예술이 아니라 선전(propaganda)이겠지.”
호퍼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 괴테가 적은 이 문장을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지갑 속에 지니고 다녔답니다. “모든 문학 활동의 시작과 끝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내 안의 세계를 통해 재현하는 것, 즉 모든 것을 파악하고, 연관시키고, 재창조하고, 조형화하고, 개인적인 형태와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예술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결국 ‘나’라는 말. 이에 동의하는 예술가라면, 자신을 위해 작업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