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즐겨 보진 않지만 눈에 띄는 신작이 가끔 있다. 요즘은 흑인 배우 캐스팅으로 원작 파괴 논란을 일으킨 디즈니의 실사판 ‘인어공주’가 궁금하다. 이제껏 지독하게 원작을 파괴하고 편견 가득한 판타지를 독점해왔던 디즈니가 드디어 개종을 한 것인지, 대체 얼마나 파격적이기에 다들 아우성일까. 아무렴, 안데르센이라면 언제든 원작을 논할 이유가 충분하다.
19세기 중반까지 동화책은 대개 구전(口傳)되던 민담과 전설을 수집해 기록한 것이었다. 그래서 시대와 언어를 막론하고 유사한 모티프가 종종 발견된다. 그림 형제의 ‘백설공주’와 샤를 페로의 ‘신데렐라’가 우리나라의 ‘콩쥐팥쥐’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는 것이 놀랍지 않다. 이런 동화들은 ‘원작’이 아닌 ‘원형(原型·archetype)’을 공유하며, 감상자의 요구에 따라 얼마든지 흑설공주도 될 수 있고 동양인 부엌데기도 될 수 있다.
반면 덴마크의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경우는 민담에서 소재를 가져왔더라도 이야기 자체는 모두 ‘창작’이다. 또한 안데르센의 대표작들에는 독특한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이종(異種) 간 화합의 시도와 좌절이다. 보통 동화에서 개구리는 마법이 풀리면 왕자로 변하지만, 엄지공주와 결혼하려는 두더지(‘엄지공주’)나 오리들 속의 백조(‘미운 오리 새끼’)는 끝내 종간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다.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었던 안데르센은 10대 때 왕립극장의 배우가 되려 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합창단원을 잠깐 했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겨우 문법학교를 졸업하고 작가가 된 뒤에는 신분 차이로 번번이 사랑에 실패해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당시만 해도 계급이 다른 남녀의 결혼은 인간과 물고기의 교제만큼이나 어려웠으니, 인어공주의 비극은 사뭇 자전적이다.
원작에서 인어공주가 인간이 되려 한 이유는 사랑이 아니다. 그녀가 간절히 바란 것은 영혼이었고, 인간 남성과 웨딩마치를 울리진 못했지만 어쨌든 해피엔딩이다. 그러니까 논란의 원흉은 대중 다수가 ‘애니’를 원작으로 여길 만큼 성공한 디즈니의 전작이다. 옳음의 가치를 선전하는 상업주의의 위선에 비하면, 덕업(德業)을 쌓아 영혼의 구원에 이르는 안데르센의 동화가 정치적으로 가장 올바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