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류
김상균 지음|웅진지식하우스|380쪽|1만9000원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는 원시시대 사람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실물 크기 모형이 있다.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사냥한 동물을 먹는 모습 등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오래전 가족과 이곳에 갔다가 딸이 원시인을 현대인과 완전히 다른 종(種)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저 사람들은 지저분하고 좀 이상해. 아빠는 멋진데.”
원시인을 보며 우리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불리는 현생 인류는 대략 30만년 전 아프리카에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유전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고. ‘진화’라는 긴 시간표상에서 그들이나 구경하고 있는 우리나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는 모습이 너무 다른데?’ 이 책 ‘초인류(Evolving Humanity)’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현대인은 원시인보다 수명도 길고 건장하며, 첨단 기술들을 바탕으로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인지과학, 산업공학, 로보틱스 등을 연구하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이를 ‘자연 진화’에 대비되는 ‘인공 진화’라 명명한다.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고 싶은데, 느려터진 진화 속도를 참지 못한 인간이 기술 개발을 통해 인공적인 진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술들이 쌓여 둑이 터지듯 거대한 변화가 불어닥칠 ‘티핑 포인트’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2020년 출간돼 20만부 팔린 ‘메타버스’ 저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인공 진화를 ‘육체’와 ‘정신’ 측면으로 나눠서 설명한다. 첨단 치료법 등을 만드는 ‘생명공학’과 원격 작업을 가능케 하는 ‘사물인터넷’, 조립부터 집안일까지 대신 해주는 ‘로봇’ 기술 등은 육체의 기능을 ‘증강’시키고 ‘확장’시킨다. 2021년 일본 도쿄 니혼바시에 중증 지체장애인들이 원격 조종하는 로봇들이 직원으로 일하는 카페가 문을 연 것이 대표적 사례다. 루게릭병, 척수 손상 등을 가진 장애인의 신체적 한계를 기술로 초월했다. 정신적 측면에선,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뇌에 다 담아둘 수 없는 인류의 지식과 경험을 외재화하고, ‘양자 컴퓨팅’ 기술로 뇌의 처리 속도 한계를 뛰어넘으며, ‘메타버스’를 통해 디지털 공간으로 사회적 관계를 확장한다. 뇌에 장치를 심어 생각만으로 의수나 드론 등을 움직이는 미래도 멀지 않았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인공 진화’가 가져올 변화상을 생각지 못한 여러 측면에서 짚어낸다는 것이다. ‘내 일자리가 사라지나’부터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동물의 해방’ ‘종교와 신의 위상’ ‘예술과 철학의 부활’ 등 다양한 지점을 다룬다. 일자리의 경우, 로봇이 ‘대체할 수 있다’ ‘아니다’를 떠나 지금과 같은 직무는 전부 사라질 것으로 저자는 전망한다. 반복적 일은 기계가 맡아 직무가 모두 재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 내 같은 업무를 하던 여러 명의 직원은 한 명만 남게 된다. 저자는 말한다. “초기에는 일자리와 역할을 빼앗겼다는 상실감과 허탈감을 느끼겠으나, 점차 기계가 하는 노동의 영역까지 관장하고 있다는 관점을 갖게 될 것”이라고. 현실적으로 위안이 되는 부분은 기계가 산출량에 따라 세금을 내게 될 것이란 부분이다. 기계세를 재원으로 사람들의 기본 소득을 보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 외에도 저자는 디지털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어른에 대한 어린이들의 정서적·사회적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며, 실험실에서 만드는 배양육 발달로 많은 동물들이 공장식 사육에서 해방되고, 수명 증가로 자녀와 부모가 동시에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가족 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할 것 등을 예상한다. 이쯤 읽으면 정말 이런 변화가 일어날까 싶다. 이에 대해 저자는 “변화 외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로 답을 대신한다.
저자도 밝히듯, 이 책은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보다는 긍정적인 시각을 전달하는 데 좀 더 주력한다. AI와 로봇 시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대신 에필로그에 ‘지나친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지속 가능성 우려’ ‘기계를 독점하는 독재자 등장 가능성’ ‘양극화 심화 우려’ 등을 적었다. 하지만 저자는 인류가 지금까지 보여준 잠재력으로 판단하건대, 이러한 문제들을 지혜롭게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두려워하며 한 걸음 물러서 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