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최지혜 지음|혜화1117|656쪽|3만5000원
‘근래의 요귀(妖鬼)’.
1930년 8월 29일 자 조선일보는 ‘데파-트멘트’, 즉 ‘백화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신문은 ‘미스코시, 조지야 백화점 백열화(白熱化)할 상업전쟁’이라는 제하의 기사에 “이러한 요괴한 존재가 경성시의 남부에 참연히 대두하기 시작하여 신경적인 도회인의 소비력을 고갈시키려고 한다”고 썼다.
당시 30만 인구가 사는 경성 장안에는 백화점이 무려 다섯 개나 있었다. 북촌의 화신(和信), 남촌의 미스코시(三越·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 조지야(丁子屋·현재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자리), 미나카이(三中井·밀리오레 명동 자리), 히라타(平田·고려 대연각 센터 자리) 등이다. 경성부청 부지에 미쓰코시가 신관을 짓자 신문은 조지야와의 상업경쟁 및 손님을 백화점에 앗긴 북촌 상점들에 대한 우려를 담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백화점을 바라봤다.
저자는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순수·장식미술을 공부한 근대 건축 실내 재현 전문가. 전작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에서 경성의 서양식 건물 실내 복원 이야기를 풀어놓은 데 이어 이번 책에선 ‘백화점의 도시’ 경성을 주목한다. 1920~1930년대 조선 근대화의 상업적 최전선으로서 경성의 백화점을 해석한다. “당시 백화점에서 팔던 물건들은 그 자체로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의 문물과 문화를 일상 속에서 접하는 접점의 현장 맨 앞에 백화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책은 당시 경성의 여러 백화점에서 발행한 층별 안내도를 참고해 1층의 식품부·생활잡화부, 2층의 화장품부·양품잡화부, 3층 양복부, 4층 귀금속부·완구부·주방용품부·문방구부, 5층 가구부·전기기구부·사진부·악기부 등을 넘나든다. 각 층에서 판매하는 ‘물건’에 초점을 맞춰 경성 사람들의 욕망과 소비, 문화와 생활을 미시적으로 탐구한다.
당시 백화점 식품부에서 인기를 끈 대표적인 상품은 조미료, 그 가운데 특히 MSG 성분의 아지노모토가 인기였다. 일본인 화학자 이케다 기쿠나에가 발명, 1908년 특허를 받은 아지노모토는 일본인의 식생활 향상에 기여할 ‘마법의 가루’로 여겨졌다. 조선에서도 아지노모토는 큰 호응을 얻었다. 국물을 만들어야 하는 음식점에서 인기를 끌어, 언젠가부터 전국의 국숫집, 냉면집, 설렁탕집 등에서 아지노모토의 사용이 자연스러워질 지경이었다. 아지노모토의 발매처인 스즈키 상점은 1934년 한글로 ‘사계의 조선 요리’를 펴내 홍보용으로 배포했는데, 육개장이나 갈비구이 조리법에도 반드시 아지노모토를 사용하도록 명시했다.
“저어, 화신에 악어껍질 핸드백이 왔는데 그거 사주어요, 네에?” 조선일보 기자였던 시인 김기림은1935년 3월 17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수필 ‘그 봄의 전리품’에서 경성의 아내들이 남편들에게 이런 ‘청탁’을 한다고 적었다. 백화점 양품잡화부의 인기 품목이었던 핸드백은 1920~1930년대 한복에 달던 주머니 대신 일상화되었으며, 1930년대엔 기능적 의미보다는 장신구로 여겨져 ‘핸드빽’이라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1920년대엔 ‘오페라백’이라 불리는 비즈나 자수 등으로 장식된 자그마한 핸드백이 인기를 끌었고, 1930년대 중반엔 ‘접는 핸드빽’, 즉 한 손에 가볍게 들거나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는 클러치백이 유행했다. 클러치백은 양장과 한복에 모두 어울려 사랑을 받았지만 끈이 없어 곧잘 소매치기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들은 여성의 핸드백 사랑을 ‘계도의 대상’으로 봤다. 소설가 이태준은 1941년 매일신보 사설에 이렇게 썼다. “아름다운 핸드백보다 좋은 책을 든 분이 더 빛나 뵈드군요.”
사진, 포스터 등 700여 장의 이미지를 곁들여 130여 개 물품의 내력과 의미를 근대의 풍경 안에서 읽어내는 책. 코티분, 구두, 모자, 시계, 인형, 피아노…. 책장을 넘길수록 당시 경성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백화점 진열품의 화려한 향연에 눈앞이 아찔해진다. 김기림은 1931년 2월 24일 자 조선일보에 실은 ‘도시풍경’에서 백화점 손님들을 “쇼윈도의 화사한 인형과 박래품 모자와 넥타이에 모여 서고 있는 불건전한 몽유병자의 무리들”이라 칭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으로 달음질치는 인간의 마음을 어찌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