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를 찾습니다
막스 뒤코스 지음·그림 | 이세진 옮김 | 국민서관 | 48쪽 | 1만4000원
“아이고, 그렇게 마음이 쓰이면 가져가시든가!”
땅주인이 킬킬대며 말했다. 오래 정성들여 가꿔온 연못이라는 할아버지의 호소는 통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땅주인은 “주차장을 만들 테니 내일 당장 떠나라”고 목소리를 높일 뿐이다.
연못은 하나의 세계였다. 개구리와 올챙이들이 헤엄치고 나비와 잠자리가 날았다. 물 위엔 연꽃이, 물가엔 하늘하늘 물풀이 자랐다. 연못이 이대로 사라지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그 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할아버지는 소매를 걷어 붙이고, 연못을 돗자리처럼 돌돌 말아 길을 떠난다. 할아버지와 연못의 방랑이 시작된 것이다.
도시에 사는 여동생 할머니에게로 갔다. 할머니는 오빠인 할아버지를 무척 반가워했지만, 고양이들이 함께 사는 거실에 연못을 두긴 어려웠다. 다음엔 교실로 가져갔다. 아이들은 연못 속 세계에 금세 열광했지만, 이번엔 교장 선생님이 “모기가 꼬인다”며 반대했다.
청둥오리들이 올챙이를 노리는 공원도 여의치 않고, 쇼핑센터 손님들에게 연못은 거치적거릴 뿐이다. 병원에선 개구리 우는 소리가 신경 쓰인다고, 현대미술관에선 요즘 사람들 취향이 아니라고 쫓겨났다. 연못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거지인 줄 알고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할아버지와 연못은 이 세상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마르고 쪼그라든 연못을 둘러메고 땅끝 먼 동네로 가는 기차를 탄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간다. 멈춰서 찬찬히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부리긴 쉽지 않다. 속도와 효율을 앞세우면 작고 느린 것들은 자리를 잃고 사라져간다. 어떤 소멸은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잃지 않고, 또 아끼고 가꾼다면, 언젠가 이 세상 어느 한 귀퉁이에 꼭 맞는 제자리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와 연못의 여정 끝에도 가슴 찡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접힌 책장을 펼쳐 더 많은 생명들과 어울려 풍성해진 연못을 만나면, 졸졸 물소리, 벌레들과 바람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